개봉 예정인 '나랏말싸미'에는
팔만대장경 원본을 달라는 일본 승려들 이야기가 나온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게
팔만대장경은 보물일 수 없었다.
그래서 태종은 일본에 거저 줄 약속까지 했고
이를 지키라는 일본 승려들은 밤을 새며 불경을 외운다.
그때 영화의 주인공 신미 스님이 등장한다.
그리고 말한다.
그렇게 갖고 싶다면 직접 만들라고.
그런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팔만대장경도 그저 나무 뭉치에 불과하다고.
불매 운동이 한창이다.
포털사이트의 댓글도 뜨겁다.
의견은 모두 알다시피 크게 나뉘고 있다.
이참에 일본을 벗어나자.
현실을 인식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자.
이런 시국에 '나랏말싸미'의 장면이 오버랩된다.
선조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보물을 지킬 것인가.
하지만 이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잘못된 약속을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왜 우리에게 팔만대장경이 필요한가로 바뀌어야 한다.
잘못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할 것이란 질문에서
왜 우리는 이 싸움을 하거나 말아야 하는지로 바뀌어야 한다.
언어는 정신이다.
만일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다면
지금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킬 수 있었을까?
우리가 한글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그 탁월한 과학적 창제원리만은 아니다.
독립 신문도 한글로 만들어졌고
성경도 한글로 만들어져 널리 전파되었다.
한글은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일본을 싫어하지 않는다.
일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심지어 신앙조차 일본인의 빚을 졌다.
일본인 미우라 아야꼬의 삶에 감동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베의 도발은 참을 수 없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배상의 문제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의 역사를 지우고 싶기 때문이고
한일 관계를 다시 설정하고 싶기 때문이며
여전히 우리를 동등한 파트너이자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를 친구로 여기지 않는데
우리가 굽혀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다.
그렇게 따지자면
식민의 근대 역사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우리는 그들보다 우위에 있던 민족이 아닌가.
현실을 직시하자고 한다.
만일 세종대왕이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결코 한글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지점에 다시 서 있다.
약속을 지키라는 일본 승려들의 생떼 앞에 서 있다.
팔만대장경을 주지 않으면
식솔들이 죽는다고 아우성 치는 불경 소리 앞에 서 있다.
그때 신미 스님이 그들 사이로 들어가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로 알아듣게 말한다.
"팔만대장경을 가져가지 못하면 너희가 죽고
팔만대장경을 가져가면 우리가 죽는다.
그러니 우리 여기서 함께 죽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기백은 아닐까.
참혹한 전쟁의 역사를 향한 준엄한 판단.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간쯤 아사히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참을 수 있다.
유니클로 옷을 입지 않아도 견딜 수 있다.
제트스트림 펜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질문에 대한 냉정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