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를 기억하는 법

1. 영화는 팩트가 아니다. 사실 역사가 그렇다.


역사는 승리자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영화가 얼마나 사실적 고증에 충실했는지는 비판의 영역으로 남겨 두자. 영화 시작 전 사실에 바탕했다는 메시지가 없는 것을 보고 짐작은 했었다. 정말로 기억해야 할 건 영화 속 대사들이 아닐지. 힘 없는 나라의 국민이 당할 수밖에 없는 설움과 비극, 그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은가.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겠다는 각오만 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적 재미는 초반의 인상적인 시작 말고는 별로였다. 그래도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몰입이 쉬웠던 건 작금의 상황 때문은 아니었을지.


2.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역사를 미워하는 법


이 영화에는 세 명의 일본 배우가 출연한다. 솔직히 세 명 다 어찌 그리 잘 생겼는지. 만일 내가 우리나라가 패배한 전쟁의 배우로 출연 요청을 받는다면 과연 자원할 수 있을까? 그것도 내 나라가 부끄럽다고 외치는 대사가 나오는 그런 영화에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해냈다. 출연료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일본을 미워하다가도, 일본에 있는 사람들까지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일본군 소년병의 역할을 한 친구는 기억해두고 싶다. 자신의 나라가 부끄럽다고 외칠 때, 그 대사를 곱씹어 외우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3. 류준열과 유해진은 분장이 필요 없었다


그냥 독립군 같았다. 어색한 대사도 없었다. 그 와중에 함경도 사투를 쓴다고 해서 '북한 영화'라고 주장하는? 댓글이 네이버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고 있었다. 이건 죄다 유해진 탓이다. 그 글을 쓴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을 찾아가 사과라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몰입을 위한 별도의 장치가 필요 없었다. 출연자들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었다. 배우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순간 오래된 사진들을 찢고 독립군들이 뛰쳐나왔다. 생각해보라. 봉오동 전투에 원빈이 나왔다면? 장동건이 출연했다면? 아무리 얼굴에 흙탕물을 찍어바른듯 영화적 몰입이 가당키나 했겠는가.


4. 역시나 인생도 영화도 타이밍 아니었던가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자전차왕 엄복동'은 흥행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영화든 기본적인 완성도는 필수다. 그건 사실에 대한 고증 보다는 몰입을 위한 장치, 그러니까 얼마나 개연성을 가진 스토리인가 하는 점이다. 좋은 영화는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부여한다. 내가 겪은 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감정적 몰입을 가능케 한다. 그런 면에서 봉오동 전투는 주먹을 쥐게 하는 영화다. 현장으로 달려가 (소총 대신) 기관총을 잡고 싶게 한다. 만화같은 장면인 줄 알면서 유해진의 뒤를 쫓게 한다. 어쨌든 독립군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라를 잃은 설움도 팩트였듯이 말이다.


5. 국뽕에 취하지 않고 애국심을 느끼고 싶다면


일본의 어느 특파원 기자가 그랬다. 지금의 불매 운동이 비열하다고. 그러면 지들이 일으킨 작금의 사태는 어떤까?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기 전에 꼭 필요한 TV 부품들은 사재기 했다는 기사는 비열함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시대가 글로벌해질 수록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더 많아질 것이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 나라와 민족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나쁜 점은 나쁜 점대로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쓸데 없는 우월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일본이 저지른 실수는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군국주의의 향수 때문이다. 거기에 찬 물 한 바가지를 쏟아부을 수 있다면 영화비 만 원은 아깝지 않다. '봉오동 전투'의 흥행을 바라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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