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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케이지

브랜더's 다이어리 #14.

병아리는 알에서 깨어 맨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생각한다던가?
그 정도의 경이감은 아닐지라도 '새것'에 대한 집착은 해가 지나도 줄어들 줄 모른다. 새 책, 새 신발, 새 가방, 새 옷...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권은 다름 아닌 디지털 기기의 포장을 뜯는 그 순간이 아닐까? 그래서 아내는 내가 열광하는 폰이며 노트북이며 카메라 등을 통칭해 '장난감'이라고 부른다(괜찮다. 장난감이라 비하해도 그것의 구매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허하기만 한다면).

'언더케이지'는 바로 이 순간을 노렸다.
대상은 매일매일 새 제품의 포장을 뜯는다 해도 절대 질리지 않을 2, 30대의 남자들. 제품 본연의 기능보다 새 것 그 자체가 주는 호기심과 설레임, 때로는 경외심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타겟이다. 놀라울 정도의 신속한 해외 신제품 공수능력을 보여주는 이 사이트(혹은 회사?)의 이름은 바로 언더케이지(UNDER KG), 다름 아닌 1kg 이하의 디지털 제품만을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곳이다.

아직 이곳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협찬을 받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시크하고 신랄한 리뷰는 '언박싱(Unboxing)'의 신선한 간접 경험과 어울리며 묘한 쾌감과 믿음을 동시에 선사한다. 국내외를 총 망라한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위주로 직접 칼로 자르고 손으로 뜯는 그 5분이 채 되지 않는 순간의 즐거움을 절묘하게 살려냈다. (네이티브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가진 이 시니컬한 목소리의 이 주인공은 한 번도 그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소비의 시대, 그것도 디지털 소비의 시대. 그것들의 용도를 학습한 지는 이미 오래건만, 왜 우리는 이토록 '새 것'이 주는 마력에 끌리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건 오늘의 이 소비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 역시 이 '새 것'에 대한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열망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니타스브랜드가 찾는 브랜드는 이러한 구매와 소비와 공유의 과정을 통해 좀 더 생산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줄 아는 그런 브랜드들이다.

'언박싱'의 기쁨처럼 찰나의 것이 아닌, 나를 좀 더 나답게 하고, 소비하고 사용하는 과정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진다고 믿을 수 있는, 그런 브랜드는 또 어디에 있을까? 그것이 주는 기쁨 역시 언더케이지가 주는 그 5분의 기쁨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데 말이다.

(p.s. 만약 이러한 감정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여성분이 있다면 떠올려 보라. 명품 가방의 포장을 뜯는 바로 그 순간을, 그 가방을 들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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