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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토스트

브랜더’s 다이어리 #15.

지금 우리 집에선 강낭콩이, 그리고 달팽이가 자라고 있다. 근래 들어 부쩍 무언가를 키우고 싶어하는 아이들 때문이다. 강낭콩의 자라는 모습이야 내 눈에도 익숙하지만 달팽이가 모양을 갖춰가는 모습은 꽤나 신기하다. 매일 야채를 갈아주고 습도를 맞춰주는 수고를 감내할 만큼은 아니지만, 하나의 생명이 자신의 모습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제법 기특할 때도 있어서다.


뜬금없이 달팽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다. 바로 회사 옆 작은 토스트 가게 때문이다. 식사로는 부족하고 간식으로는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이 곳을 찾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오래된 인테리어에서 오는 눅눅한 기운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료에 대한 불신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게의 일 매출이 여느 기업 신입 직원의 초봉에 필적한다는 사실, 그래서 주인 부부가 해마다 한 번씩 해외 여행을 다녀온다는 사실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성급함이 부끄럽기도 했고, 이 작은 가게가 10년 째 자리를 지키며 쌓았을 나름의 이유와 생존 전략이 궁금하기도 해서다. (아니다. 이것은 이미 생존의 단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취재를 마치고 디자인에 들어갈 때면 종종 좀 더 멋지고 화려한 브랜드를 취재할 껄 그랬다는 자책이 들 때가 있다. 보기에 좋은 음식에 먼저 손이 가듯이, 화려한 제품과 매장의 글 위에 얹으면 왠지 더 좋은 글이 되어 더 많이 읽힐 것 같아서다.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의 화려한 전략에 눈과 손이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가 발아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이미 성숙한 기업에게서 찾기는 참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가게는, 기업은, 브랜드는 그 과정을 알아보기가 좀 더 쉽지 않을까?


유니타스브랜드는 보이는 제품과 서비스보다 그 뒤에 숨은 사람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로 체화되어가는지를 주목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성실함, 진정성, 배려 등의 가치는 언뜻 보기에도 화려하지 않다. 마치 새해 세배를 드린 아이들에게 용돈과 함께 건네는 식상한 덕담처럼.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식상하고 흔한 한 마디를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말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한숨과 고통과 인내가 숨어 있는지를.


그래서 찾아나서기로 했다. 이 도시의 곳곳에 숨어 있는 농익은 좋은 생각과 땀내나는 숨소리, 거친 발자취를 찾아나서기로 말이다. 땅을 뚫고 나오는 강남콩 새싹의 힘처럼, 작은 알에서 자신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달팽이처럼, 하나의 브랜드가 생존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치열한 현장을 한 주에 한 곳씩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그 시도만으로도 설렌다.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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