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s 다이어리 #19.
손목이든 주머니든 뭘 차거나 넣고 다니기 싫어하는 성격 탓에 카드지갑 하나를 꼭 하나 사야지 했었다. 이놈(?)의 두툼한 지갑이 문제였다. 출퇴근시의 교통카드 기능에 소소하게 쓸 일이 끊이지 않는 카드 한 장 때문에 어디에 넣어도 불룩해지는 지갑을 대신할 존재가 항상 아쉬웠었다.
하지만 적당한 카드지갑을 고르는 일이 의외로 쉽지 않았다. 용도에 비해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원래의 용도를 넘어서는 지출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으니 몇 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그러던 차에 ‘오브젝트’를 만났고 거기서 또 ‘리블랭크’를 만났다. 착한 가격과 꼼꼼한 바느질, 내가 원하는 용도에 충실한 디자인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 카드지갑을 고른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물건(오브젝트)’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블로그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종종 지인들에게서 ‘도대체 브랜드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용도에 충실하고 합리적인 가격이면 되었지 브랜드란 ‘허세’가 왜 필요한가라는 딴지도 섞여 있다. 물론 답은 안다. 좋은 브랜드에는 그 가격을 대신할 만한, 혹은 넘어서는 ‘가치’가 숨어 있다. 하지만 이 ‘가치’란 단어만큼 추상적이고 모호한 단어도 없다. 이 단어는 아주 쉽게 허영이나 허세, 낭비 등의 단어로 전락?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주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단어가 가진 본래의 뜻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아주아주 어렵다.
하지만 이 카드지갑 하나를 고르다보니 이 단어를 조금은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이어리를 열었다. 이 지갑에는 ‘프라이탁’처럼 폐품을 재활용해 쓸만한 무엇으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게다가 프라이탁처럼 비싸지도 않다!). 나는 이들이 만든 지갑을 사는 것으로 이들의 생각에 ‘공감’했고,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의 생각에 숨어 있는 ‘가치’를 소비한 것이다. 유명 브랜드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좋은 생각’에 합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들이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좋은 브랜드를 완성하는 ‘가치’라면 조금은 설명이 될까?
그들이 ‘생산한’ 이유와 내가 ‘소비한’ 이유가 만나 또 하나의 ‘특별한’ 물건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좋은 생각(가치)들이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것, 이것이 오늘 나누고 싶었던, 카드지갑 하나를 두고 나눌 수 있는 ‘브랜드’에 관한 아주 짧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