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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닿을 여기였다 by 윤지원

쓰닮쓰담 1기 - 첫 번째 이야기, 나에 대하여

나는 이력서를 제출해서 회사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교육 여행사 창업 멤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주 업무는 교과서를 분석해서 교육적인 의미를 담은 작은 여행들을 상품화하는 것이었다. 전국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 체험 전시 등 교육과 관련된 곳의 리스트를 모았다. 교과서와 연계해서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상상했다. 상상은 구체화되었고, 교육상품이 되었다. 성장과 배움이 있는 작은 교육여행이었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았고 너무 재미있었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교육여행 외의 분야가 더 커지게 되었다. 그때에도 내가 손대는 기획은 여전히 교육적이었다. 교육적이지 않은 여행을 만드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지하고 그 길을 함께 가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독립해서 법인회사를 세웠다. 스물여덟이었다. 영어를 도구로 리더십을 배우는 캠프를 해외에서 진행했다. 잘 되는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느낌은 참가자의 주도성 부재와 캠프 이후의 연속성의 단절에서 오는 것이었다. 청소년 참가자들은 부모님의 신청으로 오게 되었고 자발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쳤을 때 끝까지 극복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부모님이 보낸 것이라는 마지막 출구. 참가자들이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닌 이상, 최종 선택은 자신들이 한 것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도성의 부재는 그들의 온전한 성장과 배움을 방해하는 치명적 요인이었다. 그들을 도울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다가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후 7H)이었다. 캠프 전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으로 딱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참가자들이 캠프 후에 얻은 리더십 습관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여러 달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코칭을 만나게 되었다.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그가 가진 가장 좋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하는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코칭이었다. 7H 프로그램과 코칭은 캠프 참가자들의 사전•사후를 위해 도입하려고 배운 것들이다. 그런데 사업 실패 후 그 두 가지가 나의 삶에 운명적으로 큰 자원이 되었다. 7H은 내가 ‘선택하는 주체’로 살아가게 도왔고, 코칭은 관계 맺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내 인생의 목적(Life purpose),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성장한다'를 찾은 것도 코칭 덕분이다.


지금의 일은 사업 실패 후 몇 개월의 암흑기를 지나서 시작했다. 사업 실패 직후, 패배감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빛이 싫어졌었다. 낮에는 암막 커튼을 치고 잠을 자고 밤에는 일어나서 최소한의 생활을 했다. 괴로운 순간들을 잊기 위한 여러 방편들이 스쳐 지나갔다. 담배, 술, 자살. 실제로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이해하지 못했던 세 가지를 이해하면서 나의 세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타인의 아픔과 슬픔, 공포와 두려움을 이해하는 폭이 넓고 깊어졌다. 개인으로서는 죽음과도 같은 암흑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 같았지만, 코치로서는 좋은 코치가 되는 하드 트레이닝을 받는 기간이었다. 이 시기를 겪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오만과 교만, 편견의 덩어리들을 매달고 있었을 것이다. 고목처럼 더 이상의 모든 성장과 변화를 멈춘 채.


‘7H프로그램’과 ‘코칭’으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돕기 시작했다. 리더십 강사로 코치로. 지금은 영화를 도구로 사용해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돕는 ‘강의하는 코치’로 살고 있다. 영화를 소비로 끝내지 않고 ‘진짜 나다움’을 찾는 도구로 사용한다. 참가자들이 영화 속 등장인물의 입장이 되어보고 누구의 감정선을 따라가는지 인식하도록 질문으로 안내한다. 참가자들은 등장인물에게 질문하고 답을 추측한다. 그리고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하고 답한다. 마음껏 내면을 탐색하며 ‘나는 언제 행복한지, 언제 화가 나는지, 어떤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그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찾아간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이미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답을 찾아내도록 돕는다. 내면의 보석을 발견하여 자신에게 감동하도록. 충분히 ‘나’에 머물며 성찰하고 나면 이제 관점을 ‘우리’로 확장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함께 성장해 나가는 순간들이 쌓여 나를 살아있게 한다. 지금,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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