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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단상 by 김선진

쓰닮쓰담 1기 - 첫 번째 이야기, 나에 대하여

착한 아이가 겪는 뒤늦은 사춘기


나는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외향적이고 부산스러운 언니와 줄곧 비교하여, 엄마가 나를 표현하곤 했다. “선진이는 펜 하고 종이만 주면 조용히 앉아 그림 그리던 아이에요.”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풍경 수채화 그림 같다. 진한 아크릴 물감보다 물에 섞은 물감으로 차분하고 조근조근 그려진 것처럼, 별다른 일 없이 무난하게 지내던 보통의 아이였다.

2017년 말, 퇴사와함께 내가 내 스스로에게 방학을 주었다. 그리고 온전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쓰기시작했고, 2019년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되찾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공부와 상담을 통해 미뤄두었던 것들을 직면하고 있다. 내면은 우주 비행사가 우주선을타고 이동 하듯 엄청난 에너지를 쓰며 흔들리고 매번 힘들어하지만, 외면은 조금씩 편안해지고 빛나기 시작하는신기한 경험을 지금도 매일, 매주 하는 중이다.


영롱한샘물


<샘솟는 물과 같은 아이>어릴 적 사주를 보는 아주머니가 나를 지칭하여 표현했다고 들었다. 커 가면서도 그 표현이 기억에남아 가끔씩 생각이 나곤 했다. 마음공부를 함께한 언니가 차를 마시다 나를 보며 ‘영롱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환호하고 좋아라 하며 인디언 네임처럼 ‘영롱한 샘물’ 이라는 별칭이 완성되었다.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는 기획자로 살아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흐르는 물에 샤워를 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곤 한다.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맑은 샘물일수록 산기슭보다는 조금 더 높이 고요한 곳에 있는 귀한 존재가 되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지어진 이름에 맞게 내 모습을 더 다듬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영어


나의 아빠는 10살 때 돌아가셨다. 아빠와의 기억은 드문드문 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영향을 끼친 것은 외국어. 중소기업진흥공간에서해외의 기술을 국내로 들여와 컨설팅과 교육을 시키는 역할이었다. 어릴 적 집에 오곤 했던 나비 넥타이를 맨 일본 할아버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금발의 부부 기억이 잔상처럼 남았다.

어린 나는 ‘커서 외국인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부터 문법 공부 보다는 문장을소리 내어 읽고 통째로 암기했다.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처럼 수 년간 외국인의 발음을 따라잡고 싶은 마음을 잊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어릴 적 작은 기억과 다짐이 이렇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사진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것을 묻고, 대답을 했다. 그 사람이 문득 질문을 바꿔서 다시 물어보았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것 말고, 평상시 숨쉬듯 하는게 뭐에요?’ 질문이 바뀌는 순간 대답도 바뀌었다. 머릿 속에 떠오른 답은 <사진>이었다. 지루한 일상도 특별한 이벤트도 여행하듯 겪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시야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장면, 사람들의 모습, 아름다운 순간이 포착되곤 하는데 그 순간은 머릿 속에 '저거 찍고 싶어!' 라는 마음의 소리가 튀어나온다.

행복한 순간의 각인. 기억을 지배하는 기록. 생각해보니 사진으로 업을 하거나 본격적 취미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마음조차 없다. 사람마다 같은 장면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 애정하는 사람을 찍으면 자신이 이렇게 환하게 웃는 줄 몰랐다는 이도 있으며, 아름다운 하늘, 노을, 꽃을 함께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가 포착되면 폰을 들어 카메라를 켠다.


 

따뜻한 울타리


나는 튀거나 드러나진 않지만, 어디서나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소식이 끊어진 친구의 안부를 나에게 묻는다. 때로는 당연하게 언제 또 모일 예정인지 불러달라고 한다. 3년 전 부터 독서모임 두가지를 꾸준히 참여했다. 3년 전 부터는 집까지 사람들을 불러 옥상파티라는 명목으로 놀기도 한다.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강연과 살롱을 찾아다닌다. HRD분야 기획자로서 수도 없는 교육의 장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울타리를 내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이승욱 정신분석가가 말했다. 직업은 가장 내밀한 결핍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아빠의 부재로 인해 가장 안전한 울타리가 비어있기에, 밖에서 그 울타리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또 다시 생각했다. 나의 가장 내밀한 결핍이기에 노력할 수 있었고, 꾸준할 수 있었고, 부족한 다른이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따뜻한 울타리를 찾아 함께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크고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며 살아가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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