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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by 박희주

쓰닮쓰담 1기 - 첫 번째 이야기, 나에 대하여

글 쓴 날짜를 보니 3년 전 겨울이다.

몇 년이 지났는데 전혀 변한 게 없으니 놀랍다.

나는 우리가 나눈 고민에 대해 쓰고 있었다.

요즘은 고민의 범위가 다양해졌다고

20대 초반의 것과 정말 다른 것 같다고

우리의 생활과 하는 일이 달라도 그것은 결국 공통된다고

그리고 그 고민들은 갈래갈래 찢어져 마치 신경처럼 퍼질게 분명하다고

매년 겨울밤 따듯한 술집에 모여 앉아하는 이야기들은

과거 학교 다닐 때 추억을 짜내던 얘기에서 미래와 고민들로 바뀌었다.

대충 그것들은

유난히 확 나이 든 부모님 모습을 깨닫는 것

그 모습이 짠해도 그들을 이해 못해 티격태격하게 되는 것

그럴 것 같지 않은 어른스러운 친구들도 집에서는 못된 철부지가 된다는 것

조부모님들을 보내드릴 시기가 왔다는 것

부모님들의 은퇴시기가 다가온다는 것

남들 보기에 부러운 자리에 있더라도 나 자신은 불안하다는 것

결혼을 바라본다는 것

조카가 하나 둘 생긴다는 것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어본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긴다는 것

아직 결혼도 아이 낳는 것도 무서운 우리라는 것

친척들은 벌써부터 결혼 얘기를 한다는 것

정작 우리 정신 수준은 스무 살과 같다는 것

직장인의 찬란함과 처절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

다시 꺼낸 이력서를 보며 씁쓸함을 맛본다는 것

잘 나가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것

안타까운 친구들에게 도움이 못 된다는 것

인연이 아니었던 친구들을 보낸다는 것

다시 시작하자니 용기내기가 힘들다는 것

이 길이 맞다는 걸 알지만 고개를 젓는다는 것

나도 모르게 관념과 선입견이 고정되가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

더 어린 친구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는 우리를 본다는 것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빚이 따라다니게 될 거라는 것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기도 힘들다는 것 그럼에도 더욱 발전해야 한다는 것

당신들의 편협한 생각 때문이 아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참는다는 것

점점 그 대상이 많아진다는 것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민이 여기저기서 터진다는 것

이야기가 끝날 때쯤 친구 하나가 말한다.

‘누가 그러던데 인생 1기는 30부터라고, 우린 이제 시작이고… 2기가 60이니 딱 우리 부모님들이네.

사람이 가장 총명한 나이는 75세래 ’

‘ 재밌네, 하긴 100세 시대도 지나는 시대인데. 근데 1기 시작도 안 한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고민이 많지.’

언젠가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며 마치 대단한 비밀인 듯 속삭이며 말해주던 프랑스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갑자기요? 별 대단한 말도 아니네 생각하며 흘려들었지만 어쨌든 지금도 생각나는 말이긴 하다.

‘나이 40 먹으면 어른이 될 것 같지. 내 정신은 아직 열다섯 그때야. '

우리가 나눈 대화들과 고민들이 또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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