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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서 괜찮아, 헤비츠

뚝섬역 인근 패스트파이브에서 미팅이 있던 날이었다. 한 번은 가봐야지 했던 블루보틀을 둘러보고 나서던 길이었다. 조그만 가죽공방 '헤비츠'를 거기서 만났다. 무언가에 끌리듯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작은 천국을 만났다. 스테인리스의 차가운 감촉보다는 나무가 좋고, 플라스틱의 생경한 느낌보다는 가죽이 좋은 나였다. 나무와 가죽은 상상 속의 온기가 있다. 한 때 살아 있었다는 이유로, 인공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 아주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적인 느낌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의 느낌, 나무와 가죽을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글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일 것이다.


한참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넓은 매장 안에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방의 느낌을 한 매장에는 직원 수가 더 많아 보였다. 모두 젊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나 아저씨 장인을 기대했던 기대가 살짝 엇나가는 순간이었다. 젊음은 생기있다. 하지만 서툴 수 있다. 매장 안의 제품들이 다시 보이는 순간이었다. 올드함 보다는 캐주얼함, 장인정신보다는 도전 정신에 가깝지 않을지. 한참을 돌아다니다 딱이다 싶은 아이템 하나를 골랐다. 바로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애플 펜슬을 위한 커버였다. 유리알처럼 매끄러운 펜슬의 표면을 덮기에 그만인 제품이었다. 역시나 가격은 할인해도 만 원을 넘었다. 잠시 고민하다 이천 원 짜리 실리콘 커버의 미끌한 느낌을 떠올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불편을 가장한 구매를 위한 변명이었다. 왠지 이 커버를 씌우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짧은 설득이 이어졌다. 제품을 집어들고 계산대를 향했다.



내 앞에 손님이 둘 더 있었다. 커플인 듯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계산대엔 두 명의 여 직원이 있었다. 공방용 갈색 앞치마를 두른 두 사람은 제품 하나를 두고 쩔쩔 매고 있었다. 젊음과 서툼, 이 건강한 단어의 조합이 어울리는 장면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10여 분을 배회하다가 겨우 계산대 앞에 섰다. 직원들이 제품 가격을 몰랐다. 수십 개의 제품 가격이 쓰여진 노란 색 노트 페이지 안에는 밑줄과 별표가 가득했다. 제품의 가격을 직접 확인하고 온 직원의 도움?을 받아 겨우 계산을 마칠 수 있었다. 가게 안을 나오는 입구 옆에는 역시나 젊은 여직원 한 분이 열심히 각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묘하게 어울리는 매장이요 직원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헤비츠를 검색했다. 광고가 8할인 검색 결과보다는 홈페이지를 찾기로 했다. 거기서 언제나처럼 'about' 메뉴를 찾았다.


"이러한 가치는 글로 적었을 때 매우 그럴싸합니다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두 가치는 서로 상반되는 면이 있으며,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인 상업환경에 어긋나죠. 더군다나 우리는 노력과 시간에 따른 정당한 가격이 있다고 믿습니다. 좋은 재료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품질 뿐 아니라 가격도 상승합니다."



흥미로웠다. 일관성이 있었다.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는 솔직함이 좋았다. 나 역시 적지 않은 브랜드 스토리를 고민하는 '버벌 브랜드'란 직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중이다. 가장 힘들 때는 포장 뿐인 브랜드를 만났을 때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뭔가가 없는데 그 '뭔가'를 써야만 할 때다. 그럴 때일수록 솔직함을 무기로 삼는다. 사소하고 소박한 차이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야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헤비츠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뭔가가 있는지 없는지 나로써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매장의 모습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솔직한 브랜드 스토리 하나에도 일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서툼을 포장하지 않고 가치를 과장하지 않았다. 장인정신의 로망에 기대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의 가치를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헤비츠는 소위 '명품'을 자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에르메스와 같은 품질의 가죽도 사용하긴 하지만, 그들처럼 가죽의 깨끗한 면만 골라 쓰거나 소를 직접 방목해서 키우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내추럴 마크도 가죽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가능한 가죽의 모든 부위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솔직하면서도 설득력 있었다. 닭살 돋는 클리셰도 없었다. 날 것 같은 문장이었다.


"헤비츠는 대중적인 가격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를 위해 누군가의 삶을 쥐어 짜고 싶지 않습니다. 이 정도 가격의 가죽제품을 만들기 위해, 손이 다 터지도록 하루 종일 앉아서 바느질만 할 숙련 장인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른바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을 착취할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이곳을 지나치지 않은 사실을 스스로 흐뭇해했다. 합리적인 가격의 선물이 필요할 때, 합리적인 가격의 선물이 필요할 때, 우연히 블루 보틀에서 미팅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조금 남았을때, 아마 나는 이 곳 헤비치 매장 안을 배회하고 있을 것 같다. 제품 마다 마다에 적힌 조그마한 메모를 읽으며, 내 이름이 새겨진 각인 제품을 주문하기도 하고, 그들의 서툰? 고객 응대에 참견도 하면서, 어느 날의 오후를 흡족하게 마무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가성비를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에겐 내 말이 어떻게 들릴지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다. 어떤 이는 제품이 아닌 그 뒤에 숨은 스토리에 매력을 느낀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이게 욕 먹을 소비라면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나마 내가 부자가 아니라 다행이다. 욕은 딱 만 삼천원짜리 펜슬 커버 하나 정도만 먹어도 될 테니까.







* 헤비츠의 브랜드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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