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출신 박사들이 마음을 모았다. 최고의 기술을 가진 그들은 무엇을 만들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선택한 사업이 조명 사업이었다. 타 산업에 비해 가능성이 큰 시장으로 보였다. 그들이 가진 기술을 통해 조명 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방등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세밀하게 조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스탠드등은 1600만 가지 컬러로 색을 바꿀 수 있었다. 수십 억에 달하는 대기업의 투자와 OEM 생산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 가지 없는 것은 바로 ‘브랜드’였다. 내가 네이밍 의뢰를 받은 때는 제품의 개발이 모두 끝난 즈음이었다. 두 세달의 작업을 통해 50여 가지의 결과물을 회사에 전달했다. 다행히 마지막 PT는 성공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최종 선정된 서너 가지의 네이밍은 나도 익히 예상한 바였다. 하지만 며칠 후 전달된 최종 결과는 전혀 다른 네이밍을 담고 있었다. 적어도 경영진 만큼은 만장일치로 선택한 이름이라고 했다.
‘소요리(小曜利)’
한자로 ‘작지만 빛나는 이로움’이라는 뜻이다. 주 타겟은 자신의 방을 직접 꾸미하고 싶어하는 1인 가구를 타겟으로 했다. 회사 동료 중 하나가 자신의 원룸에 레일 조명을 설치한 것을 보고 생각난 아이디어였다. 그들에게 조명은 단순히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가 아니었다. 자신의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꾸미고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스타일리시한 도구였다. 이 모든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말로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 조명의 존재를 알리는 이름은 어떤 이름이어야 할까? 며칠 동안 ‘소(小)’자로 시작되는 단어를 가지고 온갖 조합을 다 시도해보았다. 조명이라는 아이덴티티도 그 단어에 포함되어야 했다. 그 때 문득 ‘소요리(小曜利)’란 단어가 떠올랐다. 내 방을 밝히는 ‘작지만 빛나는 이로움’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었다.
소요리, 일상을 비추는 작은 위로
하지만 이 네이밍이 선정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이 못했다. 창업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건 당연한 예측이었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미 해외의 유수한 박람회를 다니며 자신의 독보적인 기술을 뽐내는 그런 회사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웅변했다. 사람들은 어려운 기술이나 특허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들에게 조명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도 같다고 했다. 액세서리나 패션에 가깝다고 했다.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작은 위로라고 했다. 사실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이 조명을 설치하면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조명을 켜놓을 수 있었다. 침대 위에서도 불을 끌 수 있었다. 아침이 오면 서서히 조명이 들어와 기분 좋게 잠에서 깰 수 있었다. 노트북으로 영화를 볼 때면 그에 맞게 조명을 세팅해둘 수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붉고 푸른 조명으로 공간의 분위를 한 번에 바꿀 수 있었다. 커피 한 잔이 간절한 날은 카페와 같은 조명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그에 맞는 이름이 필요했다. ‘소요리’는 바로 그런 컨셉에 너무나도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이 네이밍 작업을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업의 본질을 재정의 하는 일이었다. 이 회사는 단순한 조명 회사가 아니라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보이지 않는 괄호 안을 채우는 작업을 해야 했다. 가족이 모여 사는 집은 세밀하게 조절 가능한 방등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1인 가구나 주방등이 더욱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홀로 사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여성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즈음 ‘케렌시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었다. 케렌시아란 투우장에서 소가 마지막 공격을 위해 숨을 고르는 장소를 의미한다. 조금은 슬픈 단어지만 일상의 회복이 가능한 장소로 흔히 통용되는 말이었다. 컨셉이 조금씩 뾰족해져 갔다. 그것은 바로 ‘빛이 주는 이로움’이었다. 나는 ‘소요리(小曜利)’란 이름이 선택되었을 때 뛸 듯이 기뻤다. 경영진과 회사의 구성원들이 내 의견을 받아들였음을 의미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선명한 컨셉으로 이끄는 한 가지 질문
업의 본질을 재해석하는 일은 이만큼 중요하다. 만일 이 작업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오롯이 ‘차별화’로 설명된다. 화장품 회사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 화장품이 아닌 그 무엇임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천 개에 달하는 여타의 화장품 회사와 차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라는 광고가 괜히 전설이 된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재해석하고 재정의 하는 과정은 이제 모든 브랜딩 작업의 필수 과정이 되었다. 카이스트 출신의 박사들이 만든 조명 회사에서 ‘소요리’란 감성적인 브랜드명이 탄생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브랜드를 고민한다면 다음의 질문에 먼저 답해 보자. 자신이 만드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이름을 넣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 보자. 나는 [ ]이 아닌 무엇을 팔고 있는가. 브런치의 앞선 글에 소개한 우동 가게는 사실 ‘공감’이라는 가치를 팔고 있었다. 참기름 브랜드는 ‘양심’을 팔고 있었다. 주유소와 꽃가게는 기름과 꽃이 아닌 ‘행복’을 팔고 있었다. 이 질문의 답에 들어가는 단어, 혹은 가치들이 컨셉의 원천이 된다. 이 컨셉을 메시지나 비주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우리는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브랜딩은 어렵다. 이 질문에 한 번에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제껏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브랜딩은 한 편으로 쉬운 일이다. 소비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그림이 분명하다면, 이미 그 브랜드는 차별화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