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글을 쓰는 이들이 있다. 주로 20대의 취준생들이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글의 주제가 적힌 종이를 제비 뽑는다. 그렇게 정해진 주제를 가지고 대여섯명씩 그룹으로 나뉘어 토론을 한다. 그리고 1시간 동안 실제로 글을 ‘쓴다’. 그 다음 그 글을 서로 돌려 읽고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이 때의 원칙은 냉철한 비평보다 칭찬이다. 이렇게 주제별 글이 모이면 전시회를 한다. 화가들이 갤러리를 통해 자신의 그림을 대중들에 선보이는 것처럼. 이 모임은 1년 여가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뜨겁다. 한 번 참석한 사람들이 다시 찾는 비율이 20퍼센트를 넘어선다. 이름은 ‘로드로드’, 그런데 이 모임에는 나도 약간은 기여한 바가 있다. 그 기억은 이 모임이 만들어지기 몇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기업을 다니다 나온 취준생을 만났다.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열심은 있었으나 아이디어는 성글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물었다. 글쓰기라고 했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물었다. 브런치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고 했다. 반응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구독자를 보여주었다. 4,000여 명이 넘게 구독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함께 모여 글을 쓰는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자신처럼 글을 써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그러마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이 모임이 하나의 회사가 되어 있었다. 20대의 뜨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달뜬 그의 모습에서 나의 20대를 돌아보았다. 잠깐이지만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남이 시킨 일을 하기에도 버거운 나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도 변화가 있었다. 한 권의 책을 썼고 모임이 만들어졌다. ‘스몰 스텝’이라는 이름으로 매일의 작은 실천을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달이 갈수록 참여자가 많아졌다.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14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매일 서로가 실천한 습관의 기록을 나누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모임이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매일 한 줄 이상의 글을 쓰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영어 문장을 학습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좋은 글을 필사하는 모임, 자신의 식단과 몸무게를 인증하는 다이어트 모임, 좋아하는 글을 읽은 후 녹음해서 공유하는 모임이 새롭게 생겨났다. 심지어 매일 수학 문제를 푸는 모임이 단톡방으로 만들어졌다. 운영진 모임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이 모두가 몇 달 새에 일어난 변화였다. 더 놀라운 것은 거의 대부분의 모임은 자진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모토로라를 나온 40대 후반의 강사를 만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낭독의 재발견’이라는 단톡방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혼자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쓰자고 했다. 40대에 직장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사연을 올렸더니 어느 대표님이 선뜻 자신의 사무실을 내주겠다고 했다. 바로 새로운 단톡방이 하나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스무 명 가까운 지원자들이 생겨났다. 바로 그때 ‘글쓰는 수요일’ 모임이 생각났다. 그 모임의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모임의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뜻 퍼실리테이터로 돕겠다고 했다.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20대의 취준생과 40대의 경력자들이 모이면 또 어떤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을까.
대가족 사회를 지나 가족은 분화되었다. 대학에서는 학회 활동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 고시 준비를 더 중요시 여긴다. 1인 가구가 500만 가구를 넘어선지 오래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혼 인구가 줄어들면서 능력있는 솔로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변화는 인테리어 산업과 반려견 시장의 호황을 불러왔다. 거리에는 2900원 짜리 와인을 파는 샵들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바리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선남선녀들이 모여 책을 매개로 만남에 대한 갈증을 푼다. 외롭기 때문이다. 사람은 원래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한다. 이러한 필요는 본능에 가깝다. 이런 필요를 읽어내는 사람들이 제품을 만든다, 서비스를 만든다. 욜로, 소확행, 심플 라이프… 이 모든 트렌드의 기반에는 이렇게 작고 연약하고 외로운, 좌절감에 방황하는 개인들이 숨어 있다.
‘로드로드’ 대표에게 목표를 물어보았다. 숫자는 숫자이지만 매출이 아니었다. 20퍼센트를 넘어서는 2,30대의 자살율을 9%대로 낮추는 거라고 했다. 자신도 비슷한 아픈 경험이 있다고 했다. 만일 주변에서 2,30대의 부고를 들었다면, 그 둘 중 한 사람은 자살이 원인일만큼 심각하다고 했다. 그 방법이 바로 ‘글쓰기’라고 했다. 함께 모여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고,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치유를 얻는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필요가 있고 솔루션이 있다면, 그것을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은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같은 현상을 보고도 이해하고 깨닫는 정도는 다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예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로드로드의 대표는 달랐다. 자신의 아픔에 머물리 않고 세상의 아픔과 연결시킬 줄 알았다. 개인의 치유에 머무르지 않고 세상을 치유하고 싶은 용기를 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어느 사회적 기업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었다.
* 이미지 출처: 글쓰는 모임에 대한 짧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