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품은 질문 한 가지가 있었다. 사람도 제품이나 서비스처럼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른 중반의 뒤늦은 나이에 '브랜드'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도, 가장 매력적인 대상은 제품과 서비스 뒤에 숨은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애플'의 제품에 열광할 때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에 더 끌렸다. 아마존 뒤에 숨은 제프 베조스가 궁금했고, 유니클로에 뒤에 숨은 타다시 야나이가 궁금했다. 그들을 사람으로서 좋아하느냐는 두 번째 문제였다. 그렇게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게 된 그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이런 고민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렇다면 나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만 할까?
나는 그 한 가지 방법으로 '기록'을 선택했다. 매일 새벽에 세 줄의 일기를 썼다. 첫 줄에는 그 전날 있었던 가장 안좋았던 일을, 둘째 줄에는 가장 기분 좋고 행복했던 일을 썼다. 마지막 줄에는 그 날의 각오를 짧게 적었다. 그렇게 5년 가까이 세줄의 일기를 써왔다. 그렇게 써온 노트가 이제 대여섯 권을 헤아린다. 그리고 하루는 날을 잡아 그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 개의 주제로 나눠진 노트는 비로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어떤 일과 어떤 사람에 내게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지가 분명해졌다. 내가 어떤 일과 사람으로 인해 에너지를 빼앗기는지도 함께 알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도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을 통해 가장 큰 힘을 얻고 있었을까? 결과는 뜻밖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가장 큰 힘을 얻고 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그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강의와 대화와 교감을 통해 가장 큰 에너지를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내게 뜻밖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한 주의 일과를 모두 마친 금요일 밤의 맥주 한 캔, 그리고 영화나 미드 한 편이 일상의 가장 큰 행복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왔던 나였다. 그런데도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큰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니...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약 7년 간 다니던 회사를 나온 후 나는 어느 스타트업에서 '자기발견'이라는 주제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품어왔던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일련의 과정 중 하나였다. 다행히 이러한 뜻을 이해하고 공감해준 스타트업 대표의 도움을 얻어 교육 과정을 만들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강사가 필요한 순간이 왔다. 공교롭게도 새로운 회사의 멤버 중에는 강사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었다. 얼떨결에 내가 첫 강의를 맡는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다. 첫 강의가 있던 하루 전,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강의가 있던 그 날, 나는 식은 땀과 서늘한 기운의 존재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강의를 했는지도 모르게 첫 날이 지나갔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반응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짜리 프로그램이 5주 간의 프로그램으로 조금씩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다.
강의가 이어졌다. 그 회사를 나와 혼자 일한 후로도 강의는 계속되었다. 나는 그 과정을 한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 서비스에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갔다. 그러다 하나의 글이 무려 13만 명의 사람이 보고 가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 편집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 글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의뢰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솔직히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도 책으로 나오리라 확신하지 못했다. 표지가 정해지고, 출판사 담당자들을 만나면서도 오히려 그들을 보며 측은한 마음을 갖곤 했다. 어쩌자고 이런 무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책을 낼 생각을 하셨을까. 그렇게 첫 책이 나왔다.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책은 오래지 않아 2쇄를 찍었다. 어느 날 페북에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댓글을 남기고 갔다. 출판된 책 5권 중 1권 만이 2쇄를 찍는다며, 축하한다는 내용의 인사글이었다. 강의가 이어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행히 대부분의 강의는 내게 교감을 넘어선 용기를 주었다.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사실이 한 없이 뿌듯했다. 어느 새 나는 책의 제목인 '스몰 스텝' 전문가로 인식되고 있었다. 단순한 습관 만들기가 아닌, 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해갈 수 있느냐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책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용기를 내 공개 강의를 했다.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어설픈 내 강의를 들었다. 그 모임이 1년 가까이 이어졌다. 이제는 백수십 명의 사람들이 가입한 단톡방이 되었다. 예닐 곱개의 작은 단톡방들이 새로이 만들어졌다. 모두가 나처럼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오프모임이 커졌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이 다시 강사가 되는 놀랄운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모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제 내가 이 글의 서두에 밝힌 그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한 사람은 어떻게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브랜드란 '유명인'이 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많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브랜드라고 부를 순 없다. 반대로 무명의 사람인데도 브랜드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핵심은 역시나 '차별화'다. 다른 사람들과 뚜렷히 구분되는 철학과 가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속적인 실천이 따를 때 사람은 비로소 브랜드가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평생토록 계속된다. 그렇다면 감히 나 스스로를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감히 말하자면 '그렇다'. 나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지도, 한 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를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오래도록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나만의 방법론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주는 기쁨과 행복과 보람을 충만하게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름 없는 골목 깊숙한 곳의 어느 빵집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브랜드'다. 앞으로도 유명해질 생각은 없다. 파리 바게뜨처럼 유명한 브랜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만족한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의 특성상 작은 회사를 일군, 유명하지 않은 분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여느 큰 회사의 대표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깨달음과 감동을 숱하게 경험해왔다. 큰 회사의 브랜딩도 필요한다. 그들의 브랜딩도 진짜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파는 아줌마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꼭 광장 시장의 기름 떡볶이를 만드는 할머니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소소하지만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자신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타인에기 기쁨과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소위 '브랜드'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는 크고 거대한 브랜드보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브랜드의 존재가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좋은 생태계를 이루는 핵심적인 조건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전파하는 일이 즐겁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브랜드 스토리 파인더(Brand Story Finder)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 사람들과 작은 기업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정리하고, 퍼뜨리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나도 하나의 브랜드로 완성되어가고 싶다. 그리고 나같은 소박한? 꿈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나'라는 '브랜드'의 모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다.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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