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글로스(Into the Gloss)'라는 뷰티 블로그가 있었다. 블로그의 주인의 이름은 에밀리 와이즈(Emily Weiss), 보그(VOGUE) 매거진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녀는 직업상 수많은 셀럽을 만나고 다녔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명품 옷이나 액세서리와는 달리 적어도 화장품 만큼은 패션모델과 평범한 사람들이 쓰는 제품이 동일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이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화장품 그 자체가 아닌, 화장품을 쓰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뷰티 블로그를 개설한다. 2010년 가을의 일이었다.
그녀는 이 블로그에 자신만의 콘텐츠를 하나씩 업로드하기 시작한다. 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아티클은 '더 탑 쉘프(The Top Shelf)'라는 코너에 소개된 글들이었다. 사람들이 욕실 선반에 놓고 매일 쓰는 화장품 사진들을 소개했다. 그들만의 화장품 사용법과 피부 고민에 대한 솔직한 인터뷰들이 이어졌다. 직업적인 기회를 이용해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 바비 브라운(Bobbi Brown), 칼리 클로스(Karlie Kloss) 같은 유명 인사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욕실 사진을 블로그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구독자 수는 순식간에 늘어 월 방문자 수가 백만 명을 돌파한다. 자신과 똑같이 여드름으로 고생하는 슈퍼모델들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블로그 시작 4년 만인 2014년, 그녀는 드디어 뷰티 브랜드인 '글로시에'를 런칭한다.
"누구의 스토리가 믿음이 가는지에 따라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가 달라지죠.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을 통해 '쇼핑'을 하고 전자상거래를 통해 '구매'를 하는 셈이에요. 패션 잡지의 마스카라 제품 리뷰 기사를 참고할지, 관련 기사 댓글을 참고할지, 그도 아니면 파워 블로거의 글을 참고할지 고민을 하는 거죠. 뷰티 관련 쇼핑은 기능이나 가격과 같은 정량적 지표만으로는 선택이 어려운 영역이에요. 사용자를 전면으로 데리고 와야 합니다. 제품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스토리에 주목해야 하죠."
- 에밀리 와이즈, '글로시에' 창업자
에밀리 와이즈는 뷰티 제품을 단지 상품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감정이 개입되는 복잡한 소비 행위로 보았다. 글로시에는 초기 스킨 케어 제품 4가지로 사업을 시작했다. 메인 타겟인 밀레니얼 세대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가격으로 책정했다. 샤넬 No 5가 150달러를 주어야 살 수 있는 반면, 글로시에의 코코넛밤은 12달러로 가격을 통일하는 식이었다. 이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온라인 판매에 주력했다. 마케팅 역시 스냅챗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16년의 매출은 전년 대비 600%의 성장을 이룬다. 브랜드가 운영하는 쇼룸의 단위 면적당 매출은 애플 스토어의 평균을 넘어선다. 결국 2015년 쓰라이브 캐피털(Thrive Capital)이 리드 투자한 8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에 이어, 2018년에는 52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받는다.
밀레니얼 세대의 '에스티 로더'로 불리는 글로시에, 이 브랜드 성공의 가장 큰 비결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에밀리 와이즈는 이 놀라운 성장의 비밀을 개인의 파워(power of the individual)로 설명한다. 평범한 소비자의 스토리가 가진 힘과 영향력에 주목한 것이다. 그녀는 그저 수동적으로 듣고 반응하는 위치에 있던 소비자들을 말하는 위치로 끌어올렸다. 글로시에의 사이트는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후기와 불만족 후기를 나란히 띄운다. 사람들의 후기를 제품을 돋보이기 위한 도구로 쓰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제품을 평가할 수록 설계한 것이다. 슬랙(Slack)이라는 업무 공유 채널에 상위 100명의 사용자를 초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했다. 그 결과 주당 1,000건의 메시지가 오고 갔고, 그 결과 프라이밍 모이스처라이저 리치(Priming Moisturizer Rich) 페이셜 크림이라는 히트 상품이 탄생했다. 평범한 소비자인 자신들의 말이 제품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본 사람들은 이 브랜드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에밀리 와이즈가 말한 개인의 파워(power of the individual)가 이런 방식으로 실현된 것이다.
글로시에는 그저 상대적으로 저렴한 화장품을 파는게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한 아름다움'을 팔았다. 은은하게 광이 나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피부를 추구했다. 글로시에의 제품은 모두 연하고 자연스러운 발색을 자랑한다. 광이 나고 촉촉한, 그야말로 글로시(Glossy)한 느낌을 준다. 마케팅 문구들 역시 친구와 같은 격의 없고 재치 있는 톤으로 일관한다. 메이크업을 한 듯 안 한듯, 내추럴한 얼굴의 모델들이 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일관적으로 말해준다. 글로시에는 미국 화장품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아마존에서의 매출을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글로시에다운' 브랜드 이미지와 톤앤 매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대신 전 세계 단 두 곳의 매장을 운영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 곳은 이미 밀레니일 세대의 패션 성지이자 선망의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에 만난 모 브랜드의 마케터는 우리 나라의 특유의 '조바심'이 결국 브랜드를 단명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고백했다. '구찌' 브랜드에서 오랫동안 브랜딩을 경험한 그녀에게는, 몇 달 만에 매출의 성장을 기대하고 고집하는 창업자들의 마인드가 이해되지 않는 듯 했다. 글로시에는 에스티 로더가 아니다. 랑콤도 샤넬도, 크리스찬 디올도 아니다. 평범한 블로거 만든 채 6년이 되지 않은 신생 브랜드일 뿐이다. 글로시에가 가장 중시하는 원칙은 우선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알리는 방법에는 나름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이 화장품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는 그들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힘'에 기반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들의 철학을 지켜가는 방향을 지키기 위해 길게 바라보고 있었다.
매출은 곧 인격이다. 하지만 이 길에 왕도는 없다. 오직 매출만을 위한다면 브랜드는 버려야 한다. 거창한 포장으로 솔직한 욕심을 가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브랜드가 없는 제품과 서비스는 오래 가지 못한다. 제품은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제품에 더해진 스토리와 철학은 모방하기 힘들다. 그것이 결국은 차별화로 이어진다. 브랜딩은 제품과 서비스에 더해지는 화려한 포장이 아니다. 제품과 서비스 본연의 필요를 넘어서는 '가치'를 담는 과정이다. 글로시에는 단순히 '화장품'을 팔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자기 표현의 욕구가 강하면서도, 주머니는 얇은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팔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자문해보자. 내가 파는 이 제품은, 이 서비스는 과연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가. 이에 답할 수 없다면 브랜드는 없다. 차별화도 없다. 지속가능한 경영도 없다.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자, 이 질문에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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