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s 다이어리 #24.
소치는 우리에게 '수치'로 남을까?
아니면 아름다운 피겨 여왕의 '추억'으로 남을까?
성화는 꺼지고, 선수들은 무대를 내려왔건만, 아직도 어떤 이들은 나처럼 엉킨 실타래 하나를 가슴 속 깊이 품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바로 안현수 선수, 아니 빅토르 안의 이야기다.
어제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던 청년 하나가 이제는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들며 그들의 국가를 부르고 있다. 그가 딴 메달의 주인도 더이상 '나의 조국'이 아니다. 그의 개인사를 생각하면 축하할 일이 마땅하다 자위하면서도, 한 때 그의 조국이었던 '한국' 사람으로서 그를 바라보는 심경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지켜온 가장 큰 자산은 아마도 '자긍심'일 것이다. 이 작고 보잘 것 없는 한 나라가, 수천년을 이은 생존을 넘어 번영을 누리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적'같은 일은 오늘날 현실이 되었고, 올림픽과 월드컵은 이러한 성장과 번영을 메달로 치환하고 확인하는 일종의 잔치와도 같았다. 언제나 환경은 열악했고 선수층은 얇았다. 그러나 매번 기적은 반복되었고, 우리는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적어도 올해의 소치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만약 내가 안현수였다면 스케이팅을 위해 국적을 바꾸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나의 아들이 같은 일을 겪었다면 굳이 말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게 이 나라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 그 자체지만, 그 자부심을 아들에게까지 강요할 순 없는 일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오롯이 그 자신의 선택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빅토르 안의 선택이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그저 이 땅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 말고도, 내가 그 모든 아픔과 불행을 딛고 이 나라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런 혼란의 와중에 김연아도 떠났다. 그녀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선택한 의상의 컨셉은 노란 장미, 그 꽃말은 다름아닌 '이별'이다. 이 고별 무대를 위해 선택한 그녀의 음악은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한 때 젊고 매력적이었던 늙은 여배우가 이제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대방을 향해 회한어린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다.
그녀에게 그 어릿광대는 피겨 스케이팅이었고, 우리에게 그 어릿광대는 김연아 선수였다. 그녀가 딴 은메달이 금메달보다 빛나는 이유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뛰었던 무대가 스포츠를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무대를 떠난 것은 비단 김연아 혼자뿐이었을까?
더는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도 눈 앞의 욕심과 맹목적인 파벌에 의해 좌절하는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동메달을 따고도 눈물을 흘리거나, 세상에서 네 번째로 빨리 달리고도 미안해하는 선수가 없었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도 새로운 미래가 준비되어있는 나라였으면 좋겠고, 그 자신에게 의지만 있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허락하는 여유있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충분한 재기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의 부재 때문에 다른 나라의 국기를 흔드는 선수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
p.s. 참고로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는 다음과 같은 가사로 시작된다.
'참 아니러니 하지 않나요?
우리가 서로 연인인가요?
난 땅에 있고, 당신은 공중에 있으니.
(나 대신) 어릿광대를 (무대 위로) 올려주오.'
- Dame Judi Dench sings "Send in the Clowns" - BBC Proms 2010, <Youtube>
http://goo.gl/JWfP4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