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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봄날'을 아시나요?

브랜더's 다이어리 #25.

‘통영’하면 떠오르는건 어느 여름날 해변가에서 맛보았던 굴과 멍게의 비릿한 바다맛이다. 그다음 떠오르는건 밴드에서 종종 만나는 친구의 사진들. 통영에서 학원을 하는 친구는 뒤늦은 결혼 끝에 얻은 갓 돌 지난 아들을 종종 올린다. 그외에 나는 통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 최근 그 리스트가 하나 늘었다. 바로 ‘남해의 봄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출판사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보아도 어색한 조합이다. 바닷내음 가득한 해변가에 위치한 출판사라니. 그래서 독특하다. 그래서 궁금하다.


이 출판사의 이름을 처음 발견한 건 페이스북 타임라인 어딘가에서였다. 페북 친구의 친구쯤 되는 누군가가 ‘남해의 봄날 책이라면 무조건 산다’라는 댓글을 남겨서였다. 마침 그날 서점에 들를 일이 있어서 십여 권의 책을 서치하던 중 마지막으로 고른 것이 이 출판사의 책이었다. 책 제목은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 마침 고민하던 주제와 맥이 닿아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그날 유일하게 산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하나의 브랜드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만큼이나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고 해서 더 잘 안다 자신할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이고, 돌이켜 보면 첫인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사람이다. 그래서 특정 브랜드의 첫인상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어떤 브랜드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남해의 봄날’이 내게 준 첫인상은 독특했고 선명했으며 일관성 있었다.


남해의 봄날은 실제로 통영 유일의 출판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서울의 쟁쟁한 출판사 500곳을 제치고 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설립자인 정은영 대표가 통영에서만 일했던 것은 아니다. 서울과 통영을 첫해에만 스무 번이나 왕복했다고 한다. 지구 반 바퀴의 거리다. 하지만 이들의 만든 책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그저 그들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험의 가치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기획에서 출간까지 길게는 2년이 걸리는 정성을 담았다. 출판사는 지역 문화의 거점이 되어 책방 북스테이를 여는가 하면 '작은 책방'이라는 서점을 실제로 열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남이 다루지 않은 주제’를 ‘일관되게’ 다루고 있었고,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만큼이나 발로 뛰며 만든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통영’은 촌스러움을 벗어나 유니크한 곳으로 거듭나고 있었고, 마이너한 선택을 자신있게 살아가는 이들의 펄떡이는 숨소리로 가득했다. 이 출판사는 팔릴 법하지 않은 주제들을 다룬다. 이미 성공한 대표의 인터뷰 대신 아무도 모를 법한 작은 회사의 2,3년차 실무자들의 고민을 담는다. 10년 미만의 오너 셰프들의 삶을 취재하는가 하면 그들의 회사가 자리잡은 통영에 관한 책들도 ‘서슴없이’ 만들어낸다. 통영 인근의 이름모를 섬 부엌의 메뉴에, 서울을 떠나 통영에 정착한 요리 평론가의 삶까지 이른바 ‘마이너’한 ‘리포트’로 채 스무 권이 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조차 선명하다. 책을 만드는 이들이 그런 삶을 이미 살고 있어서다.


겨우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다시 서점에 들러 이 출판사의 모든 책을 찾아 들었다. 재고가 없는 한 두권의 책을 제외하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모아 한달음에 읽었다. 구본형의 자기계발서를 읽듯, 김애란의 소설집을 사듯, 말콤 글래드웰의 사회심리학 책을 고르듯 무조건적인 신뢰의 리스트에 출판사의 이름이 올랐다. 물론 너무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고 맹목적이며 혹 일시적인 선택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브랜드의 탄생 역시 이처럼 미미하면서도 찰나적인 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떤 이의 첫인상이 그러하듯이. 중요한건 그 첫인상에 걸맞는 일관된 행보가 이어질 수 있느냐다. 그래서 나의 이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딱 거기까지다. 대신 지켜보고 응원하고 때로는 소심한 댓글로 그 초심을 되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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