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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라면'을 아시나요?

면을 좋아한다. 면으로 된 것이면 무엇이든 잘 먹을 수 있다. 전 세계의 면요리를 탐방한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보며 열광했었다. 짜장면이야 기본이고 일본산 라멘, 베트남산 쌀국수, 이탈리아의 파스타, 한국의 안동국시까지 면요리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오케이다. 여름이면 삼시 세끼 콩국수만을 먹는다는 가수 조영남을 부러워했었다. 그런 사람이 라면을 좋아하지 않을 리 없다. 중학생 때였던가? 어느 눈오던 겨울날 처음 먹었던 '육개장 사발면'을 지금도 기억한다. 지금은 여러 종류의 라면을 전전한 끝에 오뚜기 순한맛에 완전히 정착했다. 면발에 홀릭했다. 그 쫄깃함에 있어서만큼은 타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어도 너무 없다. 왜 우리는 오뚜기 아니면 농심, 삼양 아니면 팔도여야만 할까.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었나 보다.


“1인당 라면 소비량 1위인 한국에 왜 독특한 라면이 없을까?”



10년 넘게 미식과 경영 스터디를 함께 즐기던 친구 5명이 있었다. 이들과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었나 보다. 이들이 함께 모여 나눈 대화가 이 독특한 라면의 시발점이 되었다. 프로젝트 명은 '옥토끼'로 정했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 시절 달나라로 우주선을 쏘아올린 뒤 매우 대담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문샷 프로젝트’로 부른 데서 따왔다. 이들의 사무실 이름은 '요괴소물'. 패션 브랜드 앤디앤뎁의 김석원 디자이너(50), 디자인회사 미드플래닝의 남이본 대표(49), 삼원가든 투뿔등심 등 외식업을 운영하는 SG다인힐의 박영식 대표(40), 주한 미국대사관 의전보좌관 출신인 박리안 옥토끼프로젝트 부사장(37) 등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함께 투자했다. 2017년 12월, 드디어 ‘요괴라면’이 정식 출시되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에 입점하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팔았다. 출시 한 달 만에 월 7만 개 이상씩 팔려나갔다. 대만 홍콩 등으로도 퍼져나갔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수출 의뢰가 쇄도했다.


내가 먹어본 맛은 매운 볶음맛과 간장 마요맛이었다. 불닭볶음면을 연상시키는 매운 볶음맛은 개성이 부족했다. 간장 마요맛은 언젠가 먹어보았던 일본 라면과 비슷한 맛이었다. 하지만 두 가지 버전 모두 맛에 있어서만큼은 부족함이 없었다. 면발 역시 오뚜기 라면을 떠올릴만큼 쫄깃함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총 7종의 요괴라면 중 가장 사랑받는다는 '봉골레맛'은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신사동 냉초면맛도 정말로 궁금하다. 가격은 일반 라면의 두 배에 가까운 1,600원 정도. 그래도 가끔씩 새로운 맛을 찾아나서기에는 무리한 가격만은 아니다. 아주 가끔씩 이 비용을 치르고 새로운 맛에 도전할 용의가 내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는 의문. 사람들은 왜 이런 독특한 라면에 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도전하는 것일까? 올해 초 삼성전자는 옥토끼프로젝트와 함께 '갤럭시 라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유는 한 가지다. 요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소확행'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이 아닐지. 이들 세대는 미래의 성공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세대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기성 세대의 목적으로 '노오력'으로 비틀어 이해하고 있다. 저성장이 일반화된 작금의 시대에 더 이상 노력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목표가 있음을 일찌감치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비도 그런 성향을 그대로 따른다. 미래의 확실하지 않은 행복보다 지금 이 순간을 누리는 선택을 한다. 모두가 좇아가는 유행보다는 개성 넘치는 선택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삼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SNS는 이들의 소비 성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차는 무조건 '그랜저'가 최고인줄 알았던 기성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양한 경로로 소비의 정보를 얻는다. 취향은 더욱 다양해지고 개성 넘치는 신인류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옥토끼 프로젝트는 이 세대에 주목해 세상에 없던 편의점을 만들어냈다. '고잉메리'라는 감성 편의점이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900~1900원, 셰프가 끓여주는 요괴라면을 3900원, 오렌지 3개가 들어간 착즙주스를 2500원에 판다. 연내 5개, 내년까지 2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싸도 싸구려가 아닌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트렌드’를 겨냥했다. 수익이 나지 않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고잉메리를 만든 옥토끼프로젝트의 말이다. 이렇듯 변화를 읽어내는 사람들의 세상이 우리도 모르게 도래하고 있다. 옥토끼프로젝트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10원 짜리를 50원에 파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제품의 품질만으로 승부하는 'Make and Sell'의 시장은 종말을 공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50원 짜리를 51원에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남다르게' 소비하는 방법들에 열광한다. 이런 소비에 기꺼이 지갑을여는 세대가 다름 아닌 밀레니얼 세대다. 요괴라면은 이렇듯 정형화된 라면 시장에 쏘아올린 작지만 멋진 공이다. 옥토끼프로젝트의 뿌리는 e커머스업체 네오스토어다. 네오스토어는 식품 제조사와 유통 채널 사이에서 도매, 물류관리, 마케팅 등을 연결하는 기획사 겸 대행사다. 여인호 대표가 2008년 설립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시대의 변화를 정의하고 있었다. 나는 요괴라면을 먹으면서 그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라면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소비문화를 선도하는 세대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고 있었다.


“장사의 목표는 이윤을 남기는 것이라는 오래된 질서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장사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됐고, 요괴라면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7년간 ‘유니타스브랜드’ 에디터및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는 기업, 스타트업, 공기업 등을 상대로 브랜드 컨설팅 및 소셜미디어 운영, 컨텐츠 제작, 글쓰기 등을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브랜드 관련 글쓰기와 단행본 작업도 병행 중에 있습니다. 네이밍, 슬로건, 스토리텔링, 브로슈어, 브랜드북, 단행본 등의 작업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최고의 작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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