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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예종'에 입학하는가

'한예종'으로 불리는 학교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줄임말이다. 예술계 입시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나 유명한 학교인가 보다. 서울대와 동시에 합격하면 한예종을 선택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학교의 연극영화과에 가장 많은 학생을 보내는 학원 원장님을 만났다. '레슨포케이아트'라는 이름의 학원이다. 그가 쓴 블로그 글들을 묶어 한 권의 책을 냈다. 지금은 그 두 번째 책을 작업 중이다. 직접 쓴 블로그 글만 900여 개, 한예종이라는 학교를 알게 된 것도 바로 이 원장님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자연스럽게 이 학교의 입시 전형을 웬만한 학생들 못지 않게 꿰뚫게 됐다. 어떤 학생들이 선택을 받는가, 혹은 떨어지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예술종학교


한예종은 특별한 학교다. 모든 입시 과정에 심층면접과 자소서가 포함된다. 영어 실력은 탁월하지 않아도 된다. 학습을 위한 기본적인 수준만을 검증하는 정도다. 특히 연극영화과의 경우, 입시의 향방이 면접과 자소서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원장님의 글을 천 여개 가까이 읽다보니 한예종이 선호하는 학생들에 대한 뚜렷한 기준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자기 이야기'를 가진 학생들이다. 창의적 사고를 가장 중시하는 예술 학교 입시에서는 당연한 기준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입시의 실상이 그렇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예종은 좀 다르다. 이 학원의 원장은 다음과 같은 입시 사례로 그 '남다름'의 실체를 내게 이야기해주었다.


하루는 내신 4등급, 수능 4등급의 성적을 가진 친구가 한예종을 가고 싶다며 그를 찾아왔었다. 한예종의 수준을 아는 원장에게는 난감한 방문이었다. 예술은 커녕 영화 한 편 찍어본 경험도 없는 친구였다. 그 흔한 연극 동아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특이한 점 하나가 있었다. 그 여학생이 중학교 때까지 양궁 국가 대표를 지냈다는 사실이었다. 쭈뼛거리며 말하는 훈련의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뱀을 목에 걸고 활을 쏘기도 하고, 한 밤의 공동 묘지에서 훈련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때 이 학원 원장의 머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다. 양궁의 핵심은? 집중력이다. 예술의 핵심은? 역시 집중력이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고도의 집중력과 관찰력이다. 이 내용을 있는 그대로 면접에서 말하게 했다. 양궁과 연기의 공통점인 집중력을 가지고 나머지는 노력해서 보완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나는 한예종의 특별함을 여기에서 보았다.


연극영화 전문 학원 '레슨포케이아트'의 원장은 지금까지 수 년에 걸쳐 900여 개 이상의 블로그 글을 써왔다.


레슨포케이아트의 원장은 내게 이야기했다. 입시 면접은 '소통'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게 과연 한예종만의 기준일까 하고. 모든 일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소통 아니던가. 자신의 일에 대한 몰입과 집중 아닌가. 어떤 일에서도 세심한 관찰과 감수성은 필요한 법이다. 내가 한예종의 교수라 해도 이런 친구를 뽑지 않았을까. 자소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예종 입학을 위한 자소서의 핵심은 과장하지 않음에 있다. 자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는 '진정성'에 있다. 평범함 가운데 빛나는 자신만의 '독특함'을 이야기하는데 있다. 한 마디로 '자기답게'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친구를 뽑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자기답다'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건 통용되는 기준이로구나. 무릎을 쳤다. 제대로 된 입시 과정이라면,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그대로 맞닿아 있음을 알았다. 나도, 학원 원장도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한예종 출신의 소설가 김애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어떤 학원에서도 양궁국가대표를 지낸 이 여학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르르 떼로 몰려와 관등성명처럼 자신의 출신 학교와 이름을 고래 고래 고함 지르듯 내뱉도록 교육하는 학원 출신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학원은 달랐다. 학생도 달랐다. 그 핵심에는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 하게 하는 원장이 있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차별화다. 어떻게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가 '남다른지'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1등만을 기억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비록 일반적인 스펙 싸움에서는 꼴등이라 해도 '독특함'을 가진 사람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남의 기준대로 살아가지 않는, 자신만의 분명한 가치와 철학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을 시대가 요구하고 있다. 그건 제품과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학원 조차도 하나의 브랜드 아닌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는 이 학원 성장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 촘촘히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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