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차 군산을 다녀왔다. 새벽 6시에 시작한 여정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군산은 멀었다. 교통편은 불편했다. 그나마 있는 차편들도 모두 매진되고 없었다. 무궁화호를 타고 도착한 군산역 인근에는 시장기를 달랠 어떤 음식점도 없었다. 2만 5천원의 택시비를 치르고 도착한 강의장이 있는 호텔 근처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유령 도시 같았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 곳곳에 빈 가게가 보였다. 늘 하던 습관대로 거리의 간판들을 살폈다. 마치 퇴색해가는 공단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기분이었다. 군산은 처음이었으니 어떤 편견도 없었다. 내가 받은 첫 인사도 그저 '인상'일 뿐이다. 생각보다 크고 넓은 이 도시를 나쁘게 말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모르는 특장점들이 아마도 적지 않으리라. 다만 군산하면 떠오르는게 없기는 지금도 매 한가지다. 전주하면 한옥도시가 떠오르고, 담양하면 광한루와 떡갈비가 떠오른다. 그런데 군산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원래 그런 특징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있어도 말하지 못한 때문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 하면 뭔가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탁월한 외모나 학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억 속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저 사람을 눈에 띄게 만드는 것일까, 그 뒤에는 어떤 사연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것이 일과 관련된 것이라면 바로 그 사람을 찾을 수 밖에 없다. S님은 항상 생활한복을 입고 다닌다. 게다가 사람과 옷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남들이 맥주를 찾을 때도 반드시 소주만을 마신다. 당연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그가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묘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들만을 위한 모임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러면 그렇지' 했다. 아마도 디자인과 관련된 일이 필요해지면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할 것이다. 물론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그 일이 성사될 테지만 말이다. 한 사람의 이미지는 이런 과정을 통해 타인에게 어필이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브랜드'라고 부른다. 그만의 명확한 아이덴티티와 컨셉을 가진 사람,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어떤 한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매일 두 쪽의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들었을 때 두 쪽의 책읽기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그 이유를 궁금해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새롭게 시작한 직장 이야기는 흥미롭기 그지없다. 브런치를 통해 이 스토리를 이야기했더니 10만 명의 사람이 그 글을 읽고 갔다. 그 역시 그 이미지에 걸맞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아니 되어야 한다. 요즘처럼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가 또 있었을까? 시장에서 꽈배기 하나만 잘 만들어도 TV에 나오는 세상이다.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에 열광하기 때문이다. 35년 동안 떡볶이 떡만 뽑아낸 사람이 '장인'으로 대우받는 시대다. 세상 모든 일에 실패를 경험하고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자연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1990년생들은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뛰쳐 나온다. '그들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이 세대들이 세상 모든 회사들의 일하는 방법까지 바꾸고 있다.
N님은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일한 사람이었다. 스몰 스텝의 운영진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내가 기억하는 그에 관한 첫 번째 이미지는 다름아닌 '휴직'이라는 키워드다. 그는 언제나 제대로 된 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휴직 생활을 열심히, 알차게 했다. 직장 다닐 때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곤 했다. 그런 그가 이번에도 휴직을 2년이나 연장했다. 자연스럽게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제는 유급이 아닌 무급 휴직이므로 더 신중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전략과 강의와 스마트 워크와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단어들을 휴직이란 단어와 서로 연결되 시작하면 그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진다. 대기업 전략기획실에서 일한 노하우가 스마트 워크와 연결된다. 그는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 누가 봐도 상기된 표정으로 그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다운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의 경험과 시장의 필요가 만났을 때 그는 또 하나의 브랜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때는 대기업의 명함이 없이 그만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일하고 있는 중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중 이름을 가진 별들은 얼마나 될까. 태양계에 속한 별들을 제외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이 별들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천칭자리, 게자리, 물병자리, 쌍둥이 자리... 수없이 많은 별자리 이름들은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사람이 브랜드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한 사람이 서로의 관계를 약속한 세상에 둘 도 없는 특별한 사람이 된다. 어느 가정에 새롭게 태어난 아이는 수많은 신생아들 중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과 그런 특별한 관계를 하나 둘씩 늘려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특장점과 경험이라는 ‘점’이, 그를 둘러싼 사람과 환경과 만나 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 스토리가 대중에게 알려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그를 찾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이 브랜드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혹시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다음의 과정을 거쳐 자신을 브랜딩하자. 일단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신의 특장점보다 중요한 것이 그 사람만의 Driving Force다.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처럼 금요일 밤의 미드와 맥주 한 캔으로 행복한 사람이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어떤 경험과 환경과 사람 속에 있을 때 가장 에너제틱한 사람이 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드라이빙 포스를 아는 사람은 고단한 밥벌이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경험의 '점'들을 이어 '선'을 만들고, 그 선을 이으면 비로소 하나의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하루 두 쪽 읽기라는 '점'을 1년간 찍으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찾아온다. 전에 없던 기회들이 생겨난다. 이 점들을 이으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이 스토리를 사람들이 알게 되면 반드시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그렇게 한 사람의 독특한 경험이 브랜드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브랜드가 되자. 그러기 위해 자신을 알자. 자신을 알기 위해 세 줄 일기를 쓰자. 어떤 경험과 환경과 사람을 통해 가장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지 꼼꼼히 기록하자. 그리고 그 경험들을 이어 스토리를 만들자. 그 스토리를 세상 사람들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하자. 글도 좋고 녹음도 좋고 동영상도 좋다. 블로그를 쓰거나 팟캐스트를 하거나 유튜브를 시작하자. 어떤 데이터 마이닝 전문가는 일부러 머리를 길러 묶고 다닌다고 한다. 언제나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문구로 새긴 셔츠만을 입고 다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다. 내가 '남다른' 사람임을 어필하는 만 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를 결코 잊지 말자.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단 하나의 사람으로 태어났다.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유일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누가 뭐래도 한 가지다. 우리가 살다 갔음으로 해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지는 것,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남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군산 버스 터미널에게 다음과 같은 뉴스를 들었다. 군산형 일자리 창출로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보니 군산은 과거 GM이 있던 자동차 생산의 메카였다. 그런 군산이 전기차 생산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난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10년 후의 군산은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까? 쇠락한 도시의 부활을 위한 몸부림은 어떤 스토리를 또 만들어낼까? 도시 브랜딩으로 성공한 몇 가지 사례가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도시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사람이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방법은 앞서 이야기한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그런 바램을 안고 이 넓지만 특징없는 도시를 떠나 서울로 올라오는 긴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