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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종 병기, 스크리브너를 아시나요?

글쓰기를 업으로 살고 있다. 이 달 말이면 두 번째 책이 나온다. 계약한 책까지 합치면 벌써 네 번째다. 그러다보니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짧은 글은 어디에서 써도 불편함을 몰랐다. 그런데 워드로만 백 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을 쓰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움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가장 큰 문제는 글의 구성을 완전히 바꿔야 할 때였다. 그림 한 장 없는 원고를 이리저리 옮기다 보면 반드시 사고가 생겼다. 목차를 바꾸고 글의 위치를 바꾸면 반드시 다시 바꿀 일이 생겼다. 하루 종일 이 작업을 하느라 글 한 편 쓰지 못하고 카페를 나올 때도 있었다. 긴 글은 호흡이 중요하다. 자신의 글을 수도 없이 반복해 읽어야 한다.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다. 글의 리듬감을 중요시 하는 나는 특히나 이 작업에 공을 들인다. 그러다보면 반드시 글의 위치를 바꿔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제서야 글 쓰는 프로그램이 워드 말고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바로 '스크리브너(Scrivner, 대서인)' 이란 프로그램이다.


각각의 짧은 글은 언제든 위치를 옮겨 새롭게 배치할 수 있다.


영국에 살고 있던 어느 작가(Keith Blount)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종종 빠졌던 모양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예 회사를 차렸다.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글을 다루는 그의 철학에서 나왔다. 하나의 글을 여러 개의 작은 글이 모인 집합체로 본 것이다. 스크리브너는 하나의 글을 수 없이 쪼개고 모을 수 있다. 마치 윈도우의 폴더를 보는 듯 하다. 그래서 언제고 작은 단위의 글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스크리브너의 장점은 이 뿐이 아니다. 나는 언제나 글쓰기의 실력은 글창고에서 나온다고 웅변하곤 했었다. 스크리브너는 그렇게 모은 글감들을 한 화면에 무한대로 모아놓을 수 있다. 겨울을 맞는 다람쥐처럼 거의 모든 텍스트와 사진, 음성까지 하나의 파일에 담아놓을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필요한 텍스트만을 뽑아서 쓰곤 한다. 매번 그 글의 원문을 찾아 카피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어딘가에 찾아놓았던 글감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된다.


스크리브너의 '리서치' 탭, 하나의 긴 글을 쓰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자료를 한 곳에 모은다.


그러나 나를 정말로 감동시킨 기능은 따로 있었다. 글쓰기의 능력은 얼마나 오랫동안 몰입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컴퓨터 화면을 띄워놓고 보면 수시로 유혹에 빠진다. 뉴스도 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어진다. 진행중인 스포츠 경기의 점수만 보러 들어갔다가 쇼핑 사이트의 유혹에 빠진 적이 어디 한 두번인가. 내가 브런치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오직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크고 단순한 화면, 그런데 스크리브너의 화면 보기 기능엔 더 강력한 모드가 있다. '합성 모드 입력하기'라는 어려운 이름의 이 기능은 한 마디로 전체 화면에 오직 텍스트만 띄우는 기능이다. 까맣게 암전된 화면에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만 보인다. 다른 화면은 일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글에만 집중하라는 제작자의 배려?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강압적인 배려가 기분 나쁘지 않다. 오히려 많은 경우 유용했었다.


스크리브너는 오직 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돕는 최고의 글쓰기 툴이다.


놀랍게도 스크리브너의 기능 설명서는 PDF로 800페이지에 달한다. 하지만 나는 이 두 가지 기능만으로도 이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다. 스크리브너의 가격은 맥 기준으로 6만 원 정도. 비슷한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가격도 압도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권하는 그만한 값어치를 반드시 하기 때문이다. 물론 블로그에 쓰는 짧은 글들을 쓴다면 당장은 필요 없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언젠가 책 한 권을 쓰고 싶다면, 그 글들을 한 화면에 올려 놓고 요리 조리 편집할 시간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다. 아무리 긴 글도 짧은 글의 조합에 불과하다. 나 역시 그날 그날 쓴 짧은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곤 한다. 그때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위치에 배치하는 것임을, 그래서 스크리브너와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를 금새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긴 글을 쓰지 않아도 스크리브너는 필요하다. 바로 글감 모으기 때문이다. 언젠가 쓰고 싶은 글의 주제를 잡고 글감부터 모아보라. 언젠가 그 주제의 글을 써야만 할때, 스크리브너의 이기능들이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 '스크리브너'의 트라이얼 버전을 30일 동안 써볼 수 있다. (일주일에 이틀만 쓰면 15주간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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