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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필 무렵에는...

동백은 술집을 한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없는 미혼모라 동네 여자들로부터 갖은 구박을 다 당한다. 게장 골목의 남자들이 유독 그 술집만 찾기 때문이다. 그런 동백을 좋아하는 순경이 있다. 그의 이름은 황용식,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내다. 불의를 참지 못해 연신 사고를 친다. 동백이 하는 술집의 건물주가 8,000원짜리 땅콩값을 내지 않자 그의 지갑을 들고 튀다가 고소까지 당한다. 그렇다고 이 건물주가 나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와이프로부터 받지 못하는 인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갈구하는 캐릭터다. 조금만 치켜세워도 금새 기분이 좋아지는 남자다. 그런 용식의 엄마는 동백을 아낀다. 자신의 젊은 시절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뒤늦게 즐겨보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캐릭터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별 일도 아닌 사건들로 하루 종일 북적거린다. 약간의 과장된 표현이 이 드라마에 생기를 더한다. 이 드라마, 정말로 재미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 도대체 이 재미는 어디로부터 나오고 있는가?



나는 사람 관찰을 즐긴다. 특이한 사람을 좋아한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결국은 튀어나오고야 마는 사람들의 개성을 사랑한다. 지인 중에 언제나 한복만을 입고 다니는 디자이너가 있다. 예쁜 생활 한복이다. 그런데 이 분은 대낮에도 맥주 대신 소주를 마신다. 얼마 전 그가 '사람책'이라는 스몰 스텝 모임에서 강연을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온 셈이다. 그녀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해진 건 너무도 당연했다. 나는 이렇게 글감을 찾는다. 세상에 순응하지 못한, 아니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언제나 재미있다. 반전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야말로 땡큐 소 머치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있다. 좋은 글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 궁금증이다. 스릴러가 재미있는 이유는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이다. 캐릭터는 그 질문을 해소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왜 저 사람은 한복을 입고 다닐까? 왜 저 사람은 멀쩡한 직업을 두고 휴직을 한 것일까? 왜 저 사람은 굳이 힘든 철인삼종경기를 고집하는 거지? 이런 의문이 좋은 글을 만든다. 그리고 이런 글의 핵심에는 '캐릭터'가 있다.



내 친구 중 하나는 틈만 나면 바다 수영을 즐긴다. 새벽에 오토바이를 탄다. 툭하면 심야 영화를 본다. 어린 시절에는 도룡뇽을 삼키다가 죽을 뻔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한다. 직장에 들어가 상사를 때려 1,000만원의  합의금을 내기도 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그는 세상에 둘도 없는 효자다. 늘 투덜거리면서도 부모가 진 수억의 빚을 지금도 묵묵히 갚고 있는 중이다. 기골이 장대한 그는, 그러나 의외로 세심한 사람이다. 늘 친구들의 안부를 묻는다. 타워 크레인을 탈 때는 매일 먹는 점심 사진을 톡으로 보내곤 했다. 고급 리조트에서 일할 때는 늘 일출이나 일몰 사진을 보냈다. 잠깐의 백수 시절을 보내는 지금은 낙시하는 사진을 보낸다. 나는 그 특유의 에너지가 좋다. 거친듯 하면서도 세심하고, 막 사는 듯 하면서도 생각이 깊다.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짧은 소설로 써보고 싶을 정도다. 이렇게 글감은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남다른' 그들을 표현하는 글은 그들만큼이나 '남달라야' 한다. 직접적인 표현은 아마추어다. '그는 착한 사람이다'라는 표현은 감흥이 없다. 캐릭터와 사건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수모를 당한 동백이 어딘가로 향한다. 그런 동백을 용식이 따라간다. 그들이 함께 다다른 곳은 인근의 기차역, 용식이 이유를 묻자 동백은 한참을 머뭇거린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가 가리킨 곳은 뜻 밖의 분실물 보관소, 그 다음의 대사가 내 마음을 때렸다.


"사람들한테 '사랑한다', '이렇게 되어서 미안하다'라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봤어요. 하지만 '고맙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어본 적이 없네요. 그런데 저 분실물 보관소에서 일하는 사람은 항상 두 번, 세 번 고맙다는 말을 듣고 살아요. 사람들이 두고 내린 핸드폰, 아이들 가방, 음식물 꾸러미를 찾아주니까요. 저 사람이야말로 이 기차역의 꽃인 것 같아요."


용식은 그런 동백에게 '친구'가 되자고 고백한다. 한 번도 자신의 편을 만나지 못한 동백은 그제야 용식에게 마음을 연다. 저돌적인 용식과 한없이 수동적인 동백, 그러나 할 말은 꼬박 꼬박 하고야 마는 동백은 언제나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만들어내며 이야기에 재미를 더한다. 이 동백을 향한 작가의 애정은 용식의 엄마를 통해 대신 표현된다. 그런데 애지중지하는 용식의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또 어떤 사건이 터질 것인가. 이상하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겨우 4화의 막바지, 20화까지 빼곡히 쌓여 있을 사건들을 기대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생한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스토리는 더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징은 '개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개성은 필히 밖으로 표현되는 법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용식은 항상 사건 사고의 주범이 된다. 하지만 동백은 한 없이 수동적이다. 언제나 말 끝을 흐리는 그녀 특유의 화법이 이런 캐릭터를 더욱 강화시킨다. 하지만 그 수동적인 모습들 역시 드라마 속 작은 게장 골목을 바람 잘 날 없게 만든다. 이렇게 캐릭터와 이야기는 공존공생한다. 세상에 둘도 없이 멋진 사람은 '나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동백은 동백답게, 용식은 용식답게 살아갈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나다움이 사건 사고의 원인이 되고, 이 사건들이 그들을 더욱 자기다운 삶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의 삶도 이래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쓰는 글에도 이런 스토리들이 담겨야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는 삶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삶이다. 재미 없는 삶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삶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자신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쓸거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좋은 글은 이렇게 '나다운' 삶에서 시작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처럼, 그리고 용식처럼 말이다.





* 가장 나다운 삶의 기록을 매일 함께 기록으로 남깁니다. 지금 바로 '황홀한 글감옥'으로 오세요^^

(참여코드: 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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