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읽히는 글의 첫 문장을 쓰는 법

전북 남원에 있는 화장품산업지원센터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브랜드에 관한 강의를 해달라 했다. 단 생산과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이니 이 주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을거라 했다. 나는 고민했다. 어떤 이야기로 첫 포문을 열어야 주의를 끌 수 있을 것인가. 1시간 반 전에 강의장에 도착해 두 개의 앞선 강의를 연달아 들었다. 플라스틱로 인한 환경 오염과 남원의 역사에 관한 강의였다. 슬쩍 뒤돌아 보니 제대로 듣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강의 진행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드디어 강의 시작, 나는 슬라이드 하나를 띄우고 이렇게 물었다.


"왜 8천원 짜리 은반지 하나를 50만원에 팔 수 있는 걸까요?"



화면에는 티파니 브랜드의 은반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이거야말로 사기가 아니냐고 물었다. 모든 시선이 일제히 화면으로 향했다. 그 다음에는 할리 데이비슨이 만든 오토바이 사진을 띄웠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회사 로고를 문신으로 새기는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몇몇 사람은 놀란 듯 얕은 탄성을 질렀다. 헛웃음을 짓는 사람도 많았다. 그 다음에는 프라이탁이 만든 가방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어떤 재질로 만든 가방인지를 물었다. 캔버스 천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일론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거대한 트럭 방수천을 재단하는 공장의 사진을 다시 띄웠다. 버려진 방수천으로 만든 가방이 4,50만원이나 한다고 하니 놀라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다시 이것이야말로 '사기'가 아니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오늘 말하려는 '브랜드'가 가진 힘이 이런 것이라고 얘기해주었다. 내 앞에 선 50여 명의 사람들은 이후 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나는 머리가 나쁜 편이다. 10여 년 전, 처음으로 브랜드 전문지의 에디터로 이직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나는 '캔버스'라는, 당시만 해도 핫하던 브랜드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브랜드란 개념에 대해 무지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빠르게 깨우치는 후배들과는 달리 나의 배움은 더디고 느렸다. 나이 서른 다섯의 이직은 그렇게 무모한 일이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쓰려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주말 없이 일에 매달리다가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찾아왔다. 그렇게 버티고 매달리기를 7년 가까이 반복했다. 이후 5년 간 크고 작은 회사들을 혼자 상대하며 다시 브랜드를 배웠다. 이번에는 현장이었다. 그제서야 이론으로 배웠던 브랜드에 대한 개념이 조금은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쓰고 말하는 내용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현장의 경험들은 어설픈 브랜드 지식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아, 그때 말한 그것이 이런 거였구나...' 각 분야의 숨은 고수와 구루들을 만나면서 내 지식은 더욱 더 풍부해지고 선명해졌다. 그 깨달음을을 하나 둘씩 브런치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무려 7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었다. 곧이어 출판사에서 출간 의뢰가 들어왔다. 10년 이상의 고군분투가 비로소 열매를 맺는 순간이었다.



글도 강연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는 것은 쓰지 말아야 한다. 첫 문장의 기교는 그 다음이다. 글쓴 이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한 내용이라면 독자도 설득할 수 없다. 내용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글에도 힘이 실린다. 나는 브랜드에 관한 장황한 이론으로 강연을 시작하지 않았다. '무식한' 내가 가장 놀랐던 내용으로, 가장 궁금했던 내용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사기'가 아닌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수십, 수백 배의 비용을 치르고 그 '브랜드'를 구매하는 것일까? 나의 지난 10년 이상의 공부는 바로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나는 바로 그 대목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내 앞에 선 사람들도 브랜드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들이다. 10년 전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궁금했던 내용들을 강연의 첫 머리에 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만약 이게 사기가 아니라면, 브랜드란 정말이지 엄청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화면을 향하는 것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다. 강연이 주는 쾌감을 또 한 번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좋은 글은 솔직한 글이다. 거짓없는 글이다. 진정성 있는 글이다. 그 사람의 체험이 담긴 글은 힘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저자의 깨달음의 순간을 고백하는 글은 묘한 흥분까지 불러 일으킨다. 모름지기 글이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왔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사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지식과 정보를 소화하고 해석하고 적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같은 브랜드에 대한 지식이라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프리랜서와 개인이 받아들이는 필요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대상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다. 듣고 읽는 이와 교감하는 일이다. 그들에게 굳이 시간을 들여 내 강연을 듣고 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나 혼자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보와 재미와 감동을 함께 나누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강연과 글을 쓰기 위해 가장 필요한 작업은 단 하나다. 내가 먼저 그 정보와 재미에 감동하는 일, 그 다음에야 비로소 확신을 가지고 쓰고 말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스몰 스텝의 '글감옥'에서는 매일 함께 글쓰는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

(참여코드: prison)


매거진의 이전글 읽히는 글, 팔리는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