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안에 연못이 있었다. 잉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붉은 벽돌 사이의 길고 넓은 창에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계곡에 평상을 깔아놓은 듯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드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드문드문 음식점 빼고는 아직도 성글게 빈터가 남아 있는, 김포와 서울을 잇는 어느 도시 외곽에 이런 곳이 자리잡고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금요일 이른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었다. 본관을 지나 멀리 떨어진 별관 앞에 차를 댄 후 한참을 걸어서 도착한 이곳은 다름 아닌 카페, 그렇게 우리는 '글린공원'의 입구를 지나 기대치 않은 별세계로 들어서고 있었다. 정문에 쓰인 몇 가지 키워드가 이 곳의 정체?를 아낌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Forest, Real Fresh, Relaxed, Fun...
지향하는 바가 선명한 카페였다. 도심 속 식물원, 그 안에 자리잡은 카페. 종업원들은 하나같이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주문을 받거나 서빙을 하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빵과 커피들, 한 곳에서는 식물을 팔고 있기도 했다. '식물원'을 연상시키는 컨셉의 카페였다. 이곳을 소개한 '갈비본질'의 젊은 사장님은 유동 인구로 이곳을 설명했다. 김포 신도시는 3,40대의 손님이 많다고 했다. 고깃집에 들어설 때면 대부분 유모차가 함께 움직인다고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신혼 부부들이 많은 만큼 소득 수준도 그리 높지는 않다고 했다. 퍼즐의 조각이 또 하나 맞춰졌다. 유모차 진입을 제한하는 위트 있는 안내문과 곳곳에 자리잡은 가족 단위의 손님들. 만일 이 신도시에 막 이사 온 사람들이라면,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이 있는 부모라면, 오후의 무료함을 달래고 싶은 아이 엄마가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었다. 바로 이곳을 찾을 것만 같았다. 그 증거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글린공원'의 모 회사는 한국 최초의 실내 애니멀 테마파크인 '주렁주렁'을 만든 회사다.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진다. 실내 동물원을 만들 정도의 기획력이라면 식물원을 생각해낸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은 누구나 한다. 실행할 용기를 가진 사람이 진짜다. 아마도 허허벌판이었을 이곳에 이 거대한 카페를 만들 용기는 대체 누구의 머리와 가슴에서 시작된 것일까? 이곳을 찾으면 누구나 카메라부터 꺼낸다고 한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셀카를 찍던 중년 여성의 얼굴에서 행복감이 느껴졌다. 이곳은 숲이다. 제법 쌀쌀해진 바깥의 찬 공기를 걸러낸, 따스한 햇살이 그림처럼 내리쬔다. 적당한 소음은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에게는 오히려 반가울 것이다. 이곳은 이야기하거나 공부하는 카페가 아니다. 놀이공원이다. 커피와 빵은 거들 뿐이다. 젖먹이 아이를 가진 엄마들에겐 매일 매일 다시 찾고 싶은 '자유'의 공간일 것이다.
커피를 팔려고만 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명확한 컨셉이 없다면 그저 큰 카페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식물원'이라는 명확한 컨셉은 이곳을 찾는 이에게도, 만든 이에게도 선명한 정답을 제시한다. 가족 단위의 고객을 위한 자리 배치, 놀이공원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이벤트, 산후우울증을 달래줄 엄마들을 위한 작은 배려들... 아이들을 위한 의자나 무릎 담요 등의 디테일한 배려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페로몬이 명확해야 꿀벌들이 모일 수 있다. 고객에 대한 이해와 그들의 Pain Point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이들의 컨셉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사람들이 모이게 한다. 복제하기 힘든 경쟁력을 만든다. 모르면 몰라도 알면 갈만한 곳이다. 인근에 고깃집이 많은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작은 생태계를 만든다. 아마도 10년 후엔 더 달라지겠지. 동행한 젊은 사장님은 카페 바로 앞에 거대한 고깃집을 새로이 짓고 있었다. 그의 야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만들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도 평준화가 이뤄진 지금이다. 입지와아이템 싸움은 진부하다. 커피가 아닌, 빵이 아닌, '컨셉'을 팔아야 하는 시대다. 컨셉만 선명하다면 허허벌판에도 사람을 모을 수 있다. 카페 '진정성' 역시 이곳 김포에 자리잡은 밀크티 전문 카페다. 사람들은 기막히게 페로몬을 찾아 다닌다. 다양한 취향은 그에 걸맞는 창의적인 공간에 목 말라 있다. 버려진 공장이 카페가 되는 시대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커피를 서빙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간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개성과 취향이 메뉴가 되기 때문이다. 달라진 소비자를 이해하는 것, 그들의 가려운 점을 정확히 캐치하는 것, 그에 걸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 그 과정에 명확한 컨셉을 담아내는 것, 동네 안에 작은 카페를 하나 열어도 꼭 필요한 역량이다. 여기엔 예외가 없다. 이건 생존의 문제다. 작은 가게에도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