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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가 아닙니다, '시간 여행'입니다

카페 '조양 방직' 방문 후기

입구를 찾는 일부터 난감했다. 운동장 몇 개를 펼쳐놓은 듯한 광대한 주차장에서 길을 잃었다. 길 건너의 공장 건물이 설마 카페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기존의 건물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 컨셉의 카페라고 들었을 때도 대림 창고 정도를 생각했었다. 몇 분을 헤매고 나서야 '조양 방직'이라는 간판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하고 나자 신세계가 열렸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감탄사가 절로 흘러 나왔다. 이런 공간을 카페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기발함에 무릎을 쳤다. 김포의 '카페 진정성'을 나와 차를 달린 지 약 30여 분, 인천에 위치한 이 카페는 방직 공장을 컨셉으로 한 카페가 아니었다. 그냥 방직 공장 그 자체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듯 온갖 그림고 조형물, 가구들, 소품들로 가득한 이곳은 7,80년대의 정서를 그리워하거나 신기해하는 모든 세대를 위한 놀이공간이었다. 내 옆을 지나가던 한 어르신의 말로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는 신기하겠고, 우리 같은 세대는 그리운 공간이네..."



사전 조사 따위는 할 시간조차 없었다. 즉흥적인 방문이었다. 외식업을 하는 지인분을 따라 무작정 찾아간 공간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아무런 편견 없이 그 공간 자체가 주는 정취를 오롯이 누릴 수 있었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개발을 멈춘 마을 하나를 탐방하는 기분이었다. '금성 트랙터'가 이 공간의 시간을 말해주고 있었다. 온갖 빈티지한 소품들이 빈 공장 건물 곳곳을 대신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연신 떠오르는 질문 하나, 이 공간을 처음 만든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카페를 세울 생각을 한 것일까. 철저히 계산된 설계일까, 우연과의 조우일까. 어느 쪽이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선물과도 같은 공간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유니크했다. 대한 민국 어디에서도 이런 공간을 찾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천을 방문하는 사람 중 열에 여덟 아홉은 찾는다는 이 카페를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기로 했다. 그냥 좋은 감상으로만 기억하기엔 아까운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 RAW, 빈티지, 레트로


카페 진정성의 모던한 시멘트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어느 건물이건 외벽을 살린 공간을 보면 '모던'하다는 생각이 든다. 통풍구가 그대로 드러난 이마트 건물의 천정 역시 원가 절감으로 보이진 않았다. 날 것(Raw) 그대로의 공간은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 꾸미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공간이 인위적인 공간에 지친 우리의 정서를 위로해주기 때문일까? 무언가를 더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누렸다. 바닥의 흙밭조차 그대로 살린 길을 걸었다. 어딘가에 있을 카페 매장을 찾아가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 우연의 조우조차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꺼내들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방직공장이고 어디까지가 인테리어일까?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곳곳의 공간을 탐험했다. 이 공간의 시간을 정하는 건 내 손목의 시계가 아니었다. 온갖 빈티지한 소품들과 그림, 그리고 나무 골격이 그대로 드러난 옛 공장의 탁 트인 천정이었다. 나는 거기서 거대한 빈티지를 보았다.



2. 시대의 교차, 세대의 교감


평일 낮의 한가한 시간이었으나 카페는 북적거렸다. 눈에 띄는 사실 하나는 가족 단위의 고객들이었다. 노인들도, 아이들도, 젊은이들도, 신혼 부부들도 각각의 신기한 표정으로 방직 공간 곳곳을 탐험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공간에 압도된 채 내 옆을 지나고 있었다. 메인 건물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중국 출장길에 들렀던 동양 최대의 스타벅스 매장조차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를 좇아가지 못한 올드함이 '새로움'으로 각광받고 있었다. 대체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딘가는 버려져 폐가가 되었을 공간이 왜 이곳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을 얻는 유니크한 공간을 재탄생할 수 있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공간은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의 입구가 되고, 그 시대를 경험치 못한 밀레니얼 세대에겐 놀이공원의 입구가 된다. 그 중간의 어디쯤 있을 나는 인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3. 공간의 확장, 브랜드의 경험


스타벅스 1호점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커피를 팔지 않고 '공간'을 팔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카페는 거실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준다. 내가 꾸민다면 이랬을 거란 공간에서 못다한? 인테리어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페 진정성은 집의 확장이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에 답해주는 공간이다. 언젠가 한 번 살고 싶은 공간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조양방직은 그런 의미에서 마을의 확장이다. 문만 열어도 현실과 조우하는 카페의 공간은 이제 식상해진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새로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는 매력이 조양방직의 가장 차별화된 요소다. 거실에서 집으로, 집에서 마을로,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도시 정도가 아닐까? 하나의 도시가 과거를, 다른 현재를, 미래를 경험하게 해준다면 그 자체로도 멋진 일 아닌가. 우리가 해외 여행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곧바로 다른 자극을 찾아나서는 욕심 많은 존재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화수분 때문이다. 그 욕망은 채워도 채워도 넘치지 않고, 꺼내도 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기 때문이다. 조양방직은 영리한 공간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의 정서적 배고픔을 정확히 읽은 공간이다.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여유로움을 집에서도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은 이제 시간을 사고 싶어한다. 공간을 소비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조양방직의 7,000원 짜리 커피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마신 것은 커피가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추억이고 로망이고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새로움이었으니까.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찾아온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며 사람이란 존재를 생각한다. 참 특이하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흥미롭다. 돌고 도는 시대의 정서들이 주기적으로 소비된다. 바지와 치마의 길이는 길고 짧음을 오가고, 모던과 클라식은 때를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할 대상은 눈에 보이는 공간만은 아니어야 한다. 그 뒤에 숨은 변덕스런 욕망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시대의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의 삶을 살고 싶다면 말이다.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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