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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몇년 전 직장을 다닐 때였다. 함께 일하던 디자이너가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여행지는 부산이었다. 나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부산으로 여행을 간다고? 거기에 볼게 뭐가 있다고...' 진심이었다.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낸 나는 그 광경이 생경했다. 추억으로 가득한 소중한 도시지만 여행지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뻔질나게 광복동을 드나들면서도 자갈치 시장 한 번을 가지 않은 나였다. 부산 극장에서 건널목만 건너면 바로 시장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그 건널목을 건널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생각은 달랐다. 부산 지도를 바탕으로 꼼꼼히 여행 목록을 짜며 행복해하고 있었다. 어느 새 부산은 젊은 세대의 힙한 관광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그 이유의 한 가지 단서를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일한 마케터의 한 마디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해운대 달맞이고개의 힙한 찻집 비비비당, 호방빙수가 유명하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다보면 인종이나 국가가 아닌 지역성으로 서로를 구분하기도 해요. 예를 들어 함께 일하던 상사가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우리는 사우스(South) 출신이야, 그래서 통하는 거라구' 그도 이태리의 남부 지방 출신이었거든요. 남부 사람들은 다혈질이고 컬러 감각이 뛰어나요. 부산만 해도 소비에 있어서 보수성을 띄지만 컬러에 대해서는 열려 있거든요. 감전문화마을이 대표적인 케이스에요. 마을 전체를 그렇게 형형색색의 페인트로 물들일 수 있는 지역이 몇이나 될까요?"


사실이었다. 군 입대 시절 신병들이 모여 있으면 어느 지역 출신들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특히나 부산 출신들은 말이 많다고 했다. 바다를 끼고 자라난 지역적 특성은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거칠게 뻗은 산복도로가 일본 에니메이션에서 바라본 배경과 흡싸한 곳이 부산이다. 일본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은 탓이다. 사람들은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함께 자란 친구가 우리 동네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 부부와 함께 자주 가는 카페에 들렀다.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구석 자리에서 노트북으로 일하던 손님이 슬그머니 가게를 빠져나갔다. 카페 주인은 음악의 볼륨을 귀가 먹먹할 정도로 키우고 있었다. 수 년만에 찾아온 친구라 한 마디 하려다 겨우 참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경상도 사투리가 얼마나 드세고 억셌으면... 감천문화마을의 화려한 컬러들이 그림처럼 머리 속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시장의 크기는 일본이 압도적이지만, 사실 명란의 원조는 부산이다


일본 전역을 돌며 라멘 그릇을 수집하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기차가 서는 역마다 개성 넘치는 일본의 지역 도시락들이 그렇게 신기하고 부러울 수 없었다. 왜 우리나라의 도시는 그렇게도 천편일률적일까. 기념품 하나도 독특한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휴게소에서 먹는 음식들은 어쩜 그리도 천편일률적인지. 그러나 이러한 나의 고정관념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3대의 역사를 가진 부산 기업 '삼진어묵'이 롯데 백화점 본점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는 중이다. 명란젓 하나로 일본 시장을 점령한 '덕화푸드' 역시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로컬 기업이다.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강릉하면 커피가 먼저 떠오르는 신기한 세상이 되었다. 김포 하면 '카페 진정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얼마 전 다녀온 인천의 카페 '조양방직'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변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각각의 도시들이 개성 넘치는 공간과 브랜드로 가득한 세상, 여행지마다 전혀 새로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세상에 나의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먹고 사는 데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성과 취향의 시대다. 이것은 본능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먹고 보는 것이 다른데 라이프스타일이 같다면 그게 이상한 노릇이다. 휴게소마다 개성 넘치는 음식으로 가득한 그런 세상을 꿈꾼다. 기차역마다 특산물로 가득한 먹거리가 생겨나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래야 지역이 살아나고, 그래야 사람이 살아난다. 바야흐로 로컬 브랜드의 시대가 소리 소문없이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는 중이다.








* 위와 같은 고민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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