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소련에 KV2라는 전차가 있었다. 공격력과 방어력에 모든 것을 쏟아붓느라 기동력을 포기한 괴기스러운 탱크였다. 그런데 단 한 대의 이 전차가 독일군의 탱크 부대의 전진을 하루 동안이나 막아냈다.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자 독일군은 결국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루며 돌격을 명령한다. KV2의 해치를 열고 수류탄을 던진 끝에 이 전차를 폭파시킨다. 그리고 홀로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낸 소련군의 시신에 경의를 표하고 별도로 묻어주기까지 한다. 마치 영화 '퓨리'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야기였다. 비록 목숨을 건 전쟁에서 만난 적이라 할지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군인들을 전쟁사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년 토론을 보았다. 논객으로 유명한 진중권과 유시민이 나왔다. 한 사람의 신화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논리와 팩트가 아닌 분노와 열등의식이 만들어내는 최악의 결과를 보았다. 내가 주목한 것은 정치적 논리가 아니었다. 토론, 혹은 싸움의 대상으로서의 상대방을 대하는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깨닫는 자리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진실이고, '그쪽'이라 칭하는 상대방을 토론의 상대로조차 인정하지 않으며, 자기가 만났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그를 보면서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논객의 말로를 본 것 같아 얼마나 씁쓸했는지 모른다. 그것도 한 때 같은 이야기를 하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논객이 아니었던가. 생각도 이념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대방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도 무시할 만큼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정치 선진국의 논리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 진정한 진보 정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보수진영의 가치를 지향하는 정당들이다. 무엇이 그를 저토록 분노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하게 했는지 궁금할 따름인 토론회였다.
살다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다. 균형 있는 시각을 갖기 위해 다양한 뉴스와 방송을 번갈아 보려고 애를 쓴다. 그들 중 누구든 틀릴 수 있다고 가정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최소한의 애티튜드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어떻게 자신과 모든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내가 상대방을 존중하면 상대방도 그러게 마련이다. 그가 제대로 된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2020년의 첫 신년토론은 한 논객의 몰락을 여지없이 보여준 한 편의 슬픈 동화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제라도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바라보자. 생각이 달라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 만큼은 지키려고 애를 쓰자. 그것이 시대의 논객들과 함께 한 신년 첫 날의 내 소박한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