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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공방 '헤비츠' 김태완

마리몬드, 마리몬더를 만나다 #03. 

비 오는 금요일 저녁, 신설동 근처의 작은 카페 안에서 그를 만났어. 마리몬드에는 흔치 않은 남자 고객이라 인터뷰 전부터 많은 것이 궁금했었지.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모습으로 그림을 그려보던 순간 카페 안으로 자수 스트라이프 무늬의 셔츠를 입은 그가 미끄러지듯 들어왔어. 착하고 조용한, 살짝 외로워 보인다 싶지만 뭔가 자기만의 생각이 있을 법한 이미지랄까.


대화는 물 흐르듯 흘렀어. 한 마디로 ‘외유내강’의 사람이더라. 무슨 얘기든 들어줄 것 같지만 ‘자기 고집’이 있고, 많이 고민하기보다 일단 뛰어드는 결단력도 있어 보였어. 남들보다 입대도, 복학도, (계약직이긴 하지만) 취업도 빠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더군. 그는 요즘 들어 ‘재즈댄스학원'에 다닌다고 했어. 익숙한 일상이 만들어내는 편안함조차도 매너리즘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그는 지금 무슨 생각, 무슨 고민을 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입을 빌려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어쩌면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 ;)




우선 소개부터 해야겠지?


나는 스물세 살 김태완이라고 해. 1학년 마치고 입대를 해서 작년 7월에 제대했지. 학교에선 세무회계를 전공 중인데 지금은 수제가죽제품을 만드는 회사(헤비츠, CS팀)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어. 바로 복학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아보고 싶었거든.


전공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지금의 회사를 어떤 이유로 선택했냐고?


물론 처음부터 가죽제품에 관심이 있어서 이 회사를 지원한 건 아냐. 다만 여러 회사를 전전하는 것보단 한 곳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경험을 쌓고 싶었어.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사장님이 많이 성실하다고, 괜찮을까 해서 뽑았는데 웬만한 사람보다 낫다고 칭찬해주시더라고. 단순히 사무 쪽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까지 경험하다 보니 하루하루 많이 배우는 느낌이야.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


있었지. 천연가죽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햇빛이나 비, 사람 손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원래의 색깔이 유지되지 않는 편이야. 배송기간도 길고. 그래서 어느 날 색이 일정치 않다며 자신에게만 안 좋은 제품이 간 거 아니냐고 항의하는 분이 있었어. 제품의 특성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드리니 결국 이해해주시더라고. 언젠가는 내 실수로 고객이 원하는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각인이 된 적이 있었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오히려 괜찮다며 이해해주시더라고. 그런 분들을 만나면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어.


'마리몬드'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


사실 수지 때문이었어.(웃음) 수지를 좋아하는데 우연히 들고 있는 케이스를 봤었거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위안부 할머니들과도 연관되어 있는 거야. 어떤 제품들이 있는지 사이트를 찾아가 보니 케이스 말고도 가방이나 옷 종류도 있더라고. 사실 옷을 살 시기가 되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제품을 사고 싶었어. 내 또래 애들은 비슷한 류의 유명한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나는 좀 달라. 보세일지라도, 소규모의 브랜드일지라도 개성 있는 브랜드를 좋아하거든.


주로 어떤 브랜드 제품을 좋아하냐고?


이 에코백 좀 볼래? 수납공간도 크고 안감 재질이 겉과는 달리 튼튼한 재질이야. 보통 다른 에코백은 한 가지 재질로만 되어 있잖아. 게다가 크로스로 맬 수도 있지. 마리몬드에서도 이런 제품이 나오면 괜찮지 않을까? 마리몬드 제품은 주로 꽃 패턴이라 남자들이 들기엔 조금 무리지. 티셔츠처럼 약간의 포인트만 주거나 마리몬드의 네이밍을 크게 한다던지 하면 남자들도 좋아할 것 같아.


이번엔 마리몬드 백팩도 샀어.


다른 브랜드 제품은 수납공간이 아예 없거나 너무 많아서 불편했거든. 여기는 딱 필요한 수납공간만 있어. 노트북하고 전공 책, 필통이나 노트 정도만 들고 다니는데, 딱 그런 필요를 알고 만든 것 같아서 마음에 들어. 무난한 옷을 좋아하긴 하는데 나만의 개성도 중요해. 마리몬드를 구매하는 이유도 생각을 가진 브랜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런 선택 자체가 다른 친구들과 다른 나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고?


솔직히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 다만 뭔가 잊으면 안될 것 같고 꾸준히 기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은 들어. 할머니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언젠가 모두 돌아가시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질 날이 올 것 같거든. 그래서 마리몬드 같은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요즘 무슨 고민을 가장 많이 하냐하면...


아무래도 전공에 맞춰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돼. 전공을 선택할 때도 내 성격과 주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 결정하긴 했지만 아직은 고민이 돼.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대부분 전공이나 현실적인 기준에 맞춰 살아가잖아.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한 선배들이 후회하는 모습을 많이 봤어.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글쎄… 나도 회사에 다니고 있긴 한데,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면 너무 평범하고 현실에 안주할 것 같아 댄스학원에 다니고 있어. 화요일과 목요일에 재즈 댄스를 배우러 다니거든.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일상이 평범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느낌이 좋아. 어느 정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가되 좋아하는 것 한 가지 정도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그러다 보면 결국 정말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이 인터뷰는 사회적 기업 '마리몬드'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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