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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펫 헤어'의 시작, 감동가발

우리 집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루이와 까망이, 별이는 모두 길거리에서 입양해온 친구들입니다. 두 마리는 광명역 인근에서, 나머지 한 마리는 딸아이의 수학 학원 근처에서 줏어온 친구들이죠. 그런데 실은 한 마리가 더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안타깝게도 입양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러스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날 집은 난리가 났었습니다. 와이프와 딸 아이가 펑펑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반려견과 반려묘를 위한 장례식장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죠. 수의와 납골당까지 따로 있더군요. 백 만원에 가까운 가격도 놀라웠지만 어느 틈엔가 우리 삶 깊숙히 들어온 반려문화의 뜨거운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만난 '감동가발'의 대표님은 더욱 놀라운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회사는 지금 반려견을 위한 가발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벌써 백화점에 입점까지 마쳤겠네요. 물을 사 먹는 세상이 올 줄 미철 몰랐듯이, 반려견 관련 시장 역시 이렇듯 소리 없이 폭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가 쓴 고전 '마케팅 불변의 법칙'은 그 첫 번째 법칙으로 리더십의 법칙을 이야기 합니다. 최초의 브랜드 가진 힘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법이죠. 오늘은 25년의 미용 및 가발 경험을 살려 최초의 '펫 헤어' 시장을 열고 계신 양윤경 대표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려견을 위한 가발이라는 아이템도 신선했지만, 자신의 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은 더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지속할 때 진정한 차별화와 경쟁력을 가지게 되는지에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됩니다. 부디 그 날의 제가 느꼈던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달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그 조용하지만 뜨거웠던 인터뷰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Q. 반려견을 위한 가발이라니, 너무 기발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반려견을 위한 옷도 있고 신발도 있는데 왜 가발은 없지? 그래서 만들었어요. 아직 한국은 시기 상조라고 생각해서 처음부터 미국과 유럽 시장을 생각하고 제품을 개발했죠. 게다가 가발에 IOT를 접목한 제품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저희 제품은 위치 추적과 체온 측정까지도 가능하죠. 동물들은 움직임이 많은데 가발에 설치하니까 떨어질 염려도 없어요. 특허도 한 달 만에 나왔어요. 워낙에 독특한 제품이라서요.


Q. 최근 들어 반려견 관련 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 같아요.


시장 조사를 해보면 1인 가구나 아이 없는 가정이 엄청 늘었어요. 그런 사람들의 외로움이 반영된 트렌드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국의 경우 반려견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어쩌면 반려견이 아닌 반려인 시장인지도 몰라요. 펫 테크만 해도 미국은 천문학적인 시장이 이미 형성되어 있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이 커진 것도 또 한 가지 이유가 되겠네요. 얼마 안 있으면 반려견이 등장하는 드라마도 나올 것 같아요.



Q. 한 때 가발하면 한국이 첫 손에 꼽히지 않았나요?


옛날 얘기죠. 지금은 기술 인력도 많지 않고 공장도 몇 남지 않았어요. 가발 산업 자체가 워낙 폐쇄적이기도 했구요. 기능을 가진 분은 많지만 저처럼 제품과 디자인까지 가능한 사람은 더 드물죠. 하지만 미주 시장만 해도 10억 정도의 반려견 관련 시장이 있어요.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 중에는 이미 거부가 되신 분도 많구요.


Q. 어떤 계기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첫 직장이 은행이었어요. 상고를 다녔는데 공부를 잘해서 당시 합병 전이었던 조흥은행에 입사를 했었죠. 그런데 안정적이고 월급도 많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야간 대학에서 미용 관련 학과를 다녔어요. 나만의 기술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스물 스물 올라오더군요. 다행이 어머니가 미용 일을 하셔서 익숙한 데다 재능도 있었나봐요. 결국 온갖 비웃음을 다 당하면서도 은행을 나와 미용실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월급이 10분의 1로 줄었어요. 사실상 무료 봉사하면서 일을 배웠죠. 그런데 재밌더라구요.


Q.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으셨나봐요.


디자인에 관련된 것들을 좋아했었어요. 어릴 때부터 고데기를 갖고 놀 정도로 엄마의 바운더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무시할 수 없겠죠? 어머니가 늘 머리를 따 주시고 올림 머리도 만들어주셔서 다른 집도 으례 그렇게 하는 줄로 알았거든요. 태생이 개선점을 고민하고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엉터리 같은 제품을 완제품으로 변화시켜 가는 과정을 가장 즐겨요. 그래서인지 남자 컷트를 6개월 만에 시작할 정도로 손재주를 인정받았어요. 그렇게 미용에 관한 탄탄한 기초를 쌓을 수 있었죠.



Q. 회사 이름을 '감동가발'이라고 지으셨어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많은 분들이 탈모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하세요. 그냥 일이 안 풀렸을 뿐인데 탈모까지 오면 그게 자괴감과 좌절로 이어져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시더라구요. 제가 그런 분들의 얘기를 잘 들어드리는 편이에요. 그러면 저마다의 사연을 쏟아내곤 하시죠. 그래서 제가 만드는 모든 가발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심리 치료와도 비슷해요. 집 안에 은둔하거나 대인 기피증을 가지신 분들이 저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니까요. 그렇게 사람들의 삶에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생략하고 기능적으로 접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저는 가발이 아닌 감동을 판다고 이야기해요. 제 경험을 살려서 그늘진 삶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Q. 이 일을 시작하신지 벌써 25년이나 되셨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으셨을 텐데요.


제가 일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제왕절개 수술을 한 다음 날 복대를 차고 나와 일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동안 남편이 출산 휴가를 받아 애를 봤어요. 도우미 분이 이런 집은 처음 봤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아침부터 잠 들기 전까지 일 생각만 해요. 심지어 꿈 속에서도 일할 정도에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일을 통해 자부심을 넘어선 어떤 에너지 같은 걸 느끼나봐요. 문제는 몸이 견뎌내지 못한다는 거죠. 그래서 최근엔 건강 때문에 크게 데인 일도 있었습니다. 이젠 조심하려구요.



Q. 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일 때문에 사기를 당한 적도 여러번이에요. 하지만 피해의식도 없고 일을 두려워한 적도 없어요. 고생이라 생각하지도 않아요. 저는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해도 기업가 정신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를 움직이는 가장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요. 이 일에 대한 모든 과정을 바닥부터 몸으로 배워 왔으니까요. 가발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갖고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발에 관한 한 안되는게 없다고 믿고 있어요. 나만의 스킬과 현장 경험, 수 많은 아이디어들이 항상 제 머릿 속에 있으니까요.


Q. 시장이 커지면 따라 하는 분도 많아질 것 같은데요.


국내에 가발 제작이 가능한 공장이 약 10개 정도 있어요. 하지만 저처럼 관련된 복합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죠. 맘대로 카피하라고 하죠? 그런데 아마 잘 안될거에요. 가발은 카피의 개념이 옷과는 또 다르거든요. 그 나름의 유행이 있고 소비자들의 니즈가 다 달라요. 그래서 카피가 어렵죠. 게다가 상표권은 물론 지적재산권까지 법리적인 문제에 대한 대비도 다 해두었어요. 그동안 워낙 많은 일들을 겪어왔었거든요.



Q. 마케팅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입소문의 힘을 믿어요. 직접 체험하는 것 이상의 마케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백화점에서 시작해 매장을 통해 소비자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유튜브를 활용해 가발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은 물론 실용적인 정보도 전달할 생각이에요. 요즘 자기 아이 머리를 묶지 못하는 이른바 똥손 엄마들도 적지 않아요. 그런 초보 엄마들을 위한 콘텐츠도 많이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Q. 10년 후의 회사, 그리고 대표님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우리 나라에선 해마다 열아홉이 되는 고아들이 단 돈 500만 원을 받고 세상에 나와요. 그 어린 아이들이 무얼 할 수 있겠어요. 그 돈으로 오토바이를 사서 중국집 배달을 하는게 전부죠. 국가적인 허점이라고 생각해요. 왠지 그 아이들이 눈에 밟히더라구요. 그 친구들에게 미용이나 가발 관련 기술을 가르쳐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어요. 앞길이 구만리 같은 이 아이들에 자기 밥벌이를 넘어 고급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아마 10년 후엔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제게 주어진 인생을 그렇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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