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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지키는 브랜딩, 디저트 가게 '안젤리크 보야지'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섬 홋카이도의 하코다테, 이곳은 일본에서도 개성이 강하기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한 곳으로 일본인들은 이곳 하면 가장 먼저 외국문화의 이방인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또한 디저트 가게의 격전지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서양제과점과 디저트 가게 50곳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곳에 조그마한 디저트 가게 '안젤리크 보야지'가 있습니다. 주 메뉴는 유통 기한 30분의 크레이프와 수제로 만든 초콜릿, 하지만 이곳은 일본 최대의 맛집 사이트인 '타베로그'가 선정한 '100대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실명 기반의 리뷰 사이트인 '레티'에서는 추천도 만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디저트 중에서도 만들기 쉬운 편에 속하는 크레이프와 초콜릿 만으로도 이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운영했길래 단 한 명의 직원으로 연 매출 1억 엔에 20만 명의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었을까요?



'안젤리크 보야지'의 모든 디저트 메뉴들은 수제로 만들어집니다. 이 가게가 기계를 쓰지 않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디저트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최적화된 재료를 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계를 쓰면 그에 맞는 재료를 골라야 합니다. 게다가 재료의 부드러움과 점도를 기계에 맞춰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보존료와 첨가제를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초콜릿 디저트인 쇼콜라 보야지는 가나슈의 두께와 생크림 양의 절묘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는 손으로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가게이 주인인 오하마 후미오는 처음 가게를 열 때부터 반드시 수제로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하네요.



게다가 이 가게가 만드는 크레이프의 유통 기한은 단 30분에 불과합니다. 온라인 판매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선물 포장조차 어렵습니다. 하지만 좋은 재료로 갓 구워내기 때문에 사람들은 크레이프의 맛이 원래 이랬는지에 대해 놀라곤 합니다. 가게 운영의 입장에서는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나 꾸준히 해낼 수만 있다면 커다란 경쟁력이자 차별화 요소가 되는 부분입니다. 게다가 수작업으로 만들다 보니 대량 생산은 엄두도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가게는 유독 디저트의 원료 선별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초콜릿은 단맛, 신맛, 쓴맛의 밸런스가 가장 좋고 과일향의 풍미가 있는 벨기에 산을 씁니다. 그 중에서도 퓨라토스 사의 초콜릿을 고집합니다. 좋은 재료만이 궁극의 맛을 완성시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가게의 주인은 16년 경력의 베테랑 파티시에입니다. 10년 전 독립을 결심하고 창업을 했죠. 하지만 그 자신은 경력 대비 보통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잘 만들어 팔 수 있는 것을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제외하다보니 초콜릿이 남았다고 하네요. 지금도 이곳은 정직원 한 명에 아르바이트생들이 일하는 조그마한 가게입니다. 광고비는 전혀 쓰지 않습니다. 소소한 행복을 인생의 가장 큰 기쁨으로 삼고 있기에 규모를 일부러 늘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어느 곳보다도 탄탄하게 운영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변화를 꾀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손님들의 건강을 위해 생크림의 지방분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곳은 지역 자체가 가게의 브랜딩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이국적인 정경과 느낌, 특이한 자연 환경, 도시의 때가 묻지 않은 사람들, 이런 이미지들이 디저트 가게의 분위기에 잘 녹아들었습니다. 이는 '안젤리크 보야지'의 브랜딩에 커다란 도움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코다테는 2017년 만 해도 525만 명의 사람들이 방문한 인기 높은 관광지입니다. 이 지역 인구가 26만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 셈입니다. 디저트 가게들의 수준 또한 높아 일본 전역을 통틀어 디저트의 수준이 꽤 높은 곳으로 꼽힙니다. 따라서 까다로운 미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 이곳을 찾고 있고 관광객도 많습니다. 이런 이국적인 이미지와 치열한 경쟁이 안젤리크 보야지를 지금과 같은 차별화된 디저트 가게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카페의 성공 요인을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분명 좋은 곳이지만 극적인 성공 요인을 찾기란 힘들었습니다. 그저 디저트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집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통 기한 30분과 손으로 만드는 번거로움은 분명 마이너스 요소입니다. 가게를 확장하거나 매출을 늘리는데 치명적인 단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러한 제약 조건이 오히려 이 가게의 경쟁력이자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가게의 입지 조차 번화한 도시가 아닌 일본 최북단의 섬을 택했습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가게들이 걸어간 방향과 정확히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점이 이 가게의 특장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기반에는 고객에게 '웃음과 행복의 시간과 장소'를 제공한다는, 소소한 행복을 인생의 큰 기쁨으로 삼는다는 주인의 철학이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우리는 맛집을 찾을 때마다 그 인기의 원인을 '비법'에서 찾고자 합니다. 비주얼과 메뉴의 특별함에서 그 성공 원인을 짐작해보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안젤리크 보야지'는 특별함을 찾기 힘듭니다. 주인이 그 자신을 평범한 파티시에로 이야기합니다. 메뉴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레시피는 가게 주인이 쓴 책에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게는 특별한 가게가 되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유통기한과 수제의 번거로움을 단점에서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모든 일의 방식에 있어서 기본을 고집합니다. 자신만의 삶의 철학이 분명하기에 이 가게는 평범함으로 특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번쯤 우리가 생각하는 대박, 맛집, 성공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자들 역시 이런 고집을 가진 가게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특별함 그 자체에 매달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때, 또 어떤 가게는 기본을 지키는 것으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가게는, 당신이 하는 일은 지금 어떤 기본을 지키고 있나요?




* 이 컨텐츠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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