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찰리가 초콜릿이 아닌 '젤라또 공장'에 간다면...

오늘은 조그만 젤라또 가게를 다녀왔습니다. 작다고는 하지만 매장 지하엔 해썹 인증을 받은 공장이 따로 있어요. 하지만 대표님은 공장 2개에 매장 5개 이상을 넘기지 않을 거라 하십니다. 그 이상은 관리가 힘들어 할 수 있어도 안하실거라 하네요. 강단 있는 모습에 신뢰가 갔습니다. 하긴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다가 망가진 브랜드가 어디 한 두 군데인가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공기가 반이라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젤라또는 밀도가 높다고 하네요. 바질, 단호박, 얼그레이, 쑥까지... 합성 보존료를 넣지 않은 건강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색소를 쓰지 않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쁜 색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얼핏 봐서는 엉성한 인테리어와 좁은 매장에 큰 끌림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런 작은, 겨우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소상공인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게, 수줍어하시는 대표님의 입담이 풀리자 흥미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개인사로 인해 갑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 대표님은 우연히 젤라또 공장에서 알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아이스크림과 사랑에 빠져버리죠. 그래서 젤라또 공정을 이해하기 위해 정규직이 될 방법을 고민합니다. 이 정도면 가족을 책임지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하시는군요. 


주로 어떤 손님이 오시는지를 물었습니다. 뜻밖에 평일에는 아저씨 무리들이, 주말에는 성수동을 투어하는 커플들이 많다고 하네요. 아저씨들은 산딸기나 블루베리 같은 익숙한 맛을, 커플들은 전에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찾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차별화 요소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듯 해서 같이 간 일행들과 몇 가지 아이디어를 드렸습니다.



일단 '잴라또 팩토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공장 컨셉을 제안드렸어요. 실제로 공장을 운영하시기도 하고, 거친 인테이러에 투자하기 보다는 원물의 맛을 살린 특이한 맛을 계속 개발하시는게 어떠냐고 말씀드렸죠. 가게 입구에 공장을 연상시키는 소품이나 구조물을 배치하고 포토존을 만들면 어떨까요? 방식공장을 그대로 살린 '조양방직'이란 카페도 그렇게 일어섰는데 말이죠.


하지만 오늘 가장 크게 느낀 건 수많은 작은 가게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케팅과 브랜딩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작기에 더더욱 분명한 컨셉과 차별화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런데 대표님들은 여력이 없습니다. 돈도 시간도 없으세요. 그래서 저는 중소상공인희망재단과 이런 작은 브랜드를 홍보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일이 재미있고 보람됩니다. 즐겁습니다.



비록 돈은 되지 않을지 모르나, 브랜드의 B자도 모르는 대표님들께 제가 배운 지식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런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사명감도 있지만, 가장 큰 건 역시나 별 것 아닌 조언에도 귀인을 만난 듯 맞장구 쳐주시는 대표님들입니다. 이 분들은 무능한게 아니라 잘하시는게 다를 뿐인 겁니다. 조금만 도와드리면 날개를 달 수 있는 분들이죠. 그런 작고 재미있고 차별화된 브랜드로 가득한 세상, 그게 바로 제가 꿈꾸는 '멋진 브랜드 생태계'입니다.


p.s. 이런 아이디어도 제안 드렸어요. 음악다방에서 노래 신청하듯 먹고 싶은 맛을 가게에 제안하는 코너를 만들면 어떨까요? 쌀도, 바질도, 쑥도 가능한데 안 될 이유가 없죠. 소비자들이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건 '공장'이라는 컨셉에도 충실하구요. 이름도 커플이 투어하는 과정에 맞춰 '재미또, 혼나또, 마싯또~' 등으로 세컨드 네이밍을 지어줘도 좋을 듯요. 공장이라는 '신뢰'에 '재미'까지 더해지면 더 많은 손님들이 오지 않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싼 게 아니에요, 그들이 비싼 거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