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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즈 오브 서울

브랜더's 다이어리 #31.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려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많은 욕심을 부려요. 빨리 쉽게 가려고 하죠. 그러다가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포기하고 마는데, 저는 평생 동안 제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까지 했고, 지금 저는 누가 뭐래도 노래로 먹고 살아요."


- 무명의 트로트 가수

(*사진출처 - '휴먼즈 오브 서울' 페이스북)


누군가의 인터뷰인데 누구인지 모른다.

오직 짤막한 인터뷰와 함께 제공되는 단 한 장의 사진 뿐.

그런데도 이 불친절한 인터뷰 정보에 의문이나 토를 달아본 적은 없다.

그리고 항상 되뇌인다.

그 누구의 인생에서도 배울 수가 있구나.


'휴먼즈 오브 서울'의 모태가 된 '휴먼즈 오브 뉴욕'의 탄생 이야기도 전혀 극적이지 않다.

연이은 투자 실패로 낙담한 사진가 한 사람이

매일 한 사람의 뉴욕시민을 인터뷰한 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작업이 3년 이상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후 도시 이름만 바뀐 페이스북이 하나둘씩 늘어 지금은 수 십개,

'휴먼즈 오브 서울'도 그렇게 늘어난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보이는 인터뷰는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다.

6명의 사진가, 편집자들이 돌아가며 인터뷰를 하지만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도 단 한 줄의 인터뷰 기사를 건지지 못할 때도 많다.

낯선 일을 만나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

결코 쉽지 않으리란 생각을 관련 기사를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후론 매일 올라오는 글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식 이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 나를 인터뷰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할 수 있을까? 하고.




* 최근에 본 인상적인 '휴먼즈 오브 서울' 인터뷰 내용들...


"기계과에서 CC하면 승리자라고 하죠. 저는 신이에요. 더 바랄 게 없어요. 다 가졌어요."


- 같은 기계과 여학생과 CC가 된 남학생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춤이었어요. 학교 밖에서 크루를 만들어서 밤 되면 길에 장판을 깔고 춤추고 공연도 하고 하다 보니까 학교 안에서도 애들이 많이 저를 알아보고 다가오면서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이제 저를 괴롭혔던 애들이 못 다가오더라고요. ‘크르샤’라는 말이 있어요. 한국어로 하면 ‘지붕’이라는 뜻인데, 제 친구들이 제 크르샤가 된거죠."


- 카자흐스탄에서 자란 고려인 전학생


"아침에 갓 일어난 몽롱한 상태에서 아이 얼굴을 보면 얼굴이 뿌옇게 보여요. 그러다가 점점 시야가 밝아지면서 아이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죠. 그러면 느껴요. '아...... 내가 집에 돌아왔구나.'"


- 연극배우


"대학교 앞에서 14년 째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 슬슬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만 둘 생각도 하고 있어. 그러다 보니 새벽까지 일 하고 집에 가서 가만히 누워 있다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 나이에 젊은 학생들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또 다시 가질 수 있을까?’"


- 대학가 술집 주인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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