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생각하는 법 #02.
10살짜리 딸의 토라진 모습을 보곤
종종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었다.
저 아이의 머릿 속에선 도대체 어떤 생각들이,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고.
그런데 그 답을 '픽사'에게서 듣게 될지는 몰랐다.
그것도 이토록 생생한 컬러의
3D 애니메이션으로 보게 될 줄이야.
평범한 11살 짜리 소녀가
정든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온다.
하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휑한 새 집과 낯선 학교는
이 소녀의 머릿 속 다섯 가지 감동을 요동치게 한다.
기쁨, 슬픔, 버럭, 소심, 까칠...
그 와중에 소녀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채
나머지 감정들에 이끌려 뜻밖의 일탈?을 결심하게 된다.
픽사는 이 다섯 가지 감정들의 대화와 모험을 통해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온 미국 아이의 머릿 속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는 40대의 머릿 속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다소 민망한 깨달음을 내게 던져준다.
아...
사람은 어디에 살건
나이가 몇이건
비슷한 감정의 물결 속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인간에게 '희노애락'의 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인류가 대여섯 개의 감정들을
그 표정만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만큼이나
새로운 소재나 팩트가 아니다.
BBC의 '브레인 스토리'나
'마음 6부작'과 같은 수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이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해오곤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내용을
이렇게 1시간 40분짜리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낼 수 있을지는
정말로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다.
이 영화는 아이가 겪는 하루 동안의 감정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다음과 같은 결심으로 이어진다.
내 안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나의 하루가 조금은 더 나아질 수가 있겠구나 하는
그런 소박한 결심 말이다.
영화를 끌어가는 캐릭터는 단연 '기쁨(Joy)'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진짜 주인공은 다름아닌 '슬픔'이었다는 사실.
항상 '기쁨'이라는 감정의 '민폐'인줄로만 알았던
이 뚱뚱하고 못생긴? 감정은
어느 순간 상대방과의 깊은 공감과 교감을 이끌어내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이자 기쁨의 가장 큰 동반자임을 일깨워준다.
10살 짜리 딸아이는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했다.
물론 그 재미가 나의 작은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내 마음 속 감정의 어떤 부분은
나의 10살 어스름에 잊혀진
잠재의식의 어두운 계곡 속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밤은 잠자리에 들기 전
혹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빙봉'의 존재가 있었는지를
조금 더 고민해보아야겠다.
(빙봉; 어린 시절 자신의 상상 속에서 함께 놀았던 친구같은 존재)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다섯 가지 감정들과의 행복한 동행이어야 하지 않을까?
* 이미지 출처: <The Verge>, http://goo.gl/65OJ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