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거 원정대 #02.
용리단길은 신용산역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부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건물 아래 지하도에 위치한 세련된 매장에서부터 이 길은 이어지니까요. 어디서부터가 회사이고 어디까지가 지하철역인지조차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잘 꾸며진 매장은 건물 밖 허름한 건물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어떻게 아냐구요? 이곳에서 거의 1년 가까이 브랜드북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점심 시간에 용리단길에 있는 맛집을 몇 군데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사실 PPS 버거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제가 거닐었던 그 길과 연결된 줄은 몰랐습니다. 버거 가게는 이 용리단길의 거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었으니까요.
PPS 매장은 수제버거계의 신성입니다. 사실 처음엔 노스트레스버거를 찾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매장이 공사중이라 급히 행선지를 바꿔야 했습니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PPS 버거였어요. 노스트레스버거와 비슷한 컨셉의 햄버거를 만든다고 해서 찾아온 거거든요.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도무지 햄버거 가게 같지 않은, 용리단길 특유의 올드함에 비하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련된 매장 스타일이 보는 즐거움까지 더해주었으니까요.
PPS 버거 매장은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매장이 좁아서도 아니고 폐쇄된 공간이어서도 아닙니다. 따로 간판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스테인레스로 마감된 오픈된 주방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매장의 두 면은 통유리어 되어 있어서 엄청난 개방감을 줍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요소들은 아직 성근 느낌을 줍니다. 좌석 수가 적지 않지만 다른 인테리어 요소들은 많지 않아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려한 턴테이블이 보이고 음료수를 비치한 냉장고를 빼면 딱히 복잡한 인테리어 요소가 거의 없어요. 햄버거 가게의 특유의 오밀조밀한 번잡함이 없어 마치 세련된 카페 같은 인상을 줍니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한옥의 창살 무늬를 한 식당은 묘하게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갖게 합니다.
버거를 시켰습니다. 미래스러운 매장 분위기에 비하면 햄버거의 구성은 매우 간촐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야채가 없다는 거에요. 오직 빵과 고기, 소스로만 맛을 냈습니다. 제가 주문한 버거는 잘게 설은 감자를 튀겨 식감을 더해준 듯 했어요. 동행한 크라이치즈버거 이사님은 이 스타일이 요즘 유행이라고 하시더군요. 일종의 어메리칸 스타일인 모양이에요. 앞서 소개한 노스트레스버거도 같은 방식입니다. 빵과 고기의 풍미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거죠. 하지만 운영적인 면에서도 이런 스타일은 매우 유리합니다. 신선도가 생명인 야채를 다루지 않아도 되니 관리도 쉽고 재고에 대한 우려도 한층 덜할 거에요. 하지만 같은 이유로 진입 장벽이 낮은 버거이기도 합니다. PPS 버거가 스타일과 인테리어, 컨셉에 치중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빵이 맛있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막상 먹어보니 단맛이 조금 강했어요. 패티의 풍미와 소스는 훌륭했지만 오히려 빵의 맛이 이 밸런스를 깨트린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빵이 담백했다면 오히려 패티의 맛을 더 부각시킬 수 있을거란 생각을 먹으면서 했거든요. 제가 먹은 시그니처 버거엔 감자 튀김이 들어가 있었는데 특별하게 다른 식감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냥 빵에 묻혀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맛이란게 원래 개개인의 취향을 따르기 마련이니 한 번 드셔보시고 판단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아쉬운 건 가격이었습니다. 야채도 들어있지 않은 버거인데 결코 싸지 않았거든요. 생각날 때마다 들르기엔 조금 버거운 햄버거 가게였습니다. 하지만 이 가격에도 노림수는 있었겠죠? 만일 용산 공원이 개장을 한다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관광에 가까운 느낌을 이 가게를 찾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가격 정도는 용납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버거 원정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버거 맛은 거기서 거기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햄버거란 음식, 참 어려운 음식 같아요. 각각의 재료는 평범하지만 최고의 조합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예를 들어 크라이치즈버거의 경우는 각각의 야채의 신선도는 물론 최고의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현재도 진행중이에요. 소금의 두께, 양상추의 아삭함을 지키기 위해 포장 무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죠. 그 미묘한 차이를 소비자들은 금새 알아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PPS 버거는 그런 재료의 조합 보다는 컨셉과 스타일에 집중한 느낌입니다. PPS(Post Pleasure Sound)란 어려운 이름도 그런 고민 끝에 나왔을거라 생각해요. 사실 용리단길은 어찌 보면 오래된 길처럼 보이지만 군데 군데 세련된 가게들이 적지 않아요. 분위기를 소비하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이 가게를 들러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용리단길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평일 낮시간이긴 했지만 조금 적막하고 스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요즘 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그냥 기분 탓이었을까요? 용산이 새롭게 개발되어 사람들을 맞을 때까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용산 일대가 공원으로 재오픈하면 용리단길도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이 길의 소소하지만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PS 버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햄버거를 서울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는 건 축복임에 분명하니까요. 혹 용산에 들르실 일이 있다면 점심은 PPS 버거와 노스트레스버거를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