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 조각

전교일등 스카우트하기

by 비행기모드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친구들이 중학교 선행학습을 시작하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그때, 우리 집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던 아빠가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엄마와 함께 학원을 개원하게 된 것이다. 학생이 그리 많지도 않고, 교육열이 높지 않은 경상북도 소도시에서 입시 학원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학연과 지연으로 똘똘 뭉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빠는 이제 막 서울에서 귀촌 한 ‘이방인 원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이미 동업을 결정한 상황이었고, 학원 운영의 성패가 곧 우리 집의 생계를 좌우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개원을 앞두고 부모님은 밤낮으로 바빠졌다. 신생 학원인 만큼 홍보가 관건이었다. 우리 가족은 전단지 붙이기, 판촉물 배부, 무료 학습 진단 등 많은 안건을 두고 고민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불현듯 아이디어가 스쳤다. 전교 일등! 전교 일등을 스카우트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전교 일등이 되면 가장 좋겠지만, 그걸 기다리다 간 우리 가족이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될게 뻔했다. 전교 일등이 우리 학원을 다니게 된다면, “그거 알아? 걔도 여기 다닌대.” 하면서 빠르게 입소문이 날 것이고 똑똑한 아이도 선택한 유능한 학원, 요즘 대세인 이미지가 형성될 것이라는 전략이었다.

나의 목표는 우리 동네에서 ‘괴물’로 불리던 서연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즈음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시험만 쳤다 하면 올백을 맞았다.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서 전학을 온 것도 아니다. 아이들, 학부모, 교사 모두 그 아이의 영재성에 놀라 비결을 물었지만, 학원은 한 번도 다니지 않았고 집에서 책만 읽는다고 답했다. 그런 서연의 대답이 꽤 오랫동안 한결같아서였을까. 서연에게 학원을 같이 다니자고 제안하는 사람 역시 드물었다.


며칠 후, 나는 서연의 반에 찾아갔다. 당돌한 마음으로 찾아가긴 했지만, 나와 아주 친하지 않은 사이인데 다짜고짜 우리 학원에 다니라고 하자니 떨리기도 하고 거절 당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뭐 별 수 있겠는가! 밑져야 본전이고, 성공을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사실 우리 부모님이 학원을 새로 오픈하셔. 서울에서 아주 좋은 시스템을 들여와서 여기에는 그동안 없었던 최신식 학원을 오픈할 거야. 혹시 너 학원 다닐 생각 있어? 만약에 네가 다닌다면, 내가 부모님한테 잘 말씀드려서 넌 여러 혜택받도록 해줄게. 네 마음은 어떤지 편하게 말해줘.”

긴장해서 얼굴이 벌게진 채로 서연의 대답을 기다렸다. 단 한 번도 학원을 다니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제일 잘 하는 애가 학원을 다니려 할까? 내가 너무 무리한 욕심을 둔 건 아닐까? 그제야 막강한 후회가 몰아쳤다. 괜한 용기를 탓할 때쯤, 서연은 말했다.

“좋아. 다녀볼래. 학원 궁금했어.”


그렇게 서연은 우리 학원의 초창기 수강생이 되었고, 전략대로 우리 학원은 ‘전교 일등도 처음으로 선택한 학원’이라는 긍정적인 입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비록 서연은 우리 학원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긴 했지만, 서연이 몇 주 다녀준 것만으로도 수강생 유입 효과는 확실했다.


시간이 흘러 서연은 우리나라 유명 대학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원이 되었고, 우리 부모님은 지금도 그때 그 학원을 운영하시며 딸 둘을 대학까지 보냈다. 20년 전에 있었던 사소한 해프닝을 누가 기억할까 싶냐마는, 나는 목적의식과 당돌함으로 무장해 누군가를 처음 설득했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느덧 나도 현실에 타협하기 쉬운 어른이 되었다. 뭘 하든 ‘안 될 것 같다’는 다수의 편견에 부딪힐 때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당차게 기회의 문을 두드릴 수 있던 이유는 의외였던 서연의 대답을 들어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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