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서 행복합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남편은 어머니를 모시고 바람을 쐬러 나갔고, 나는 형님을 만나러 나섰다. 교통이 안 좋은 형님 학원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집까지 가야 할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 햇살은 좋았고, 바람도 부드러웠다. 오늘 같은 봄날, 대중교통을 이용해 걷는 것, 그 자체로 여유롭겠다 싶었다. 걸으며 그 동네에서 살던 시절의 익숙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울렸다. 바로 옆에 사는 지인이었다. 오늘 출근하지 않아 집에 있다며 차 한잔하자고 했다. 내가 세종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말 한마디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순간, 그 마음이 고맙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기꺼이 나를 데리러 와준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말을 주고받은 건 아니었지만, 말보다 진심이 더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그녀와의 인연은 어느덧 30년이 되어간다, 아이들이 어릴 적, 공동육아를 시작한 교육공동체가 인연의 시작이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놀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서른이 되었고, 우리도 그 시절을 지나 노년을 준비하고 있다. 긴 세월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이웃 이상이 되었고, 함께한 날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을 포개놓았다.
아이들이 서로를 형제처럼 여기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생 친구를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아주 흐뭇하다. 생각처럼 자주 만나지 않더라도,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닮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들, 함께한 시간이 마음속에 깊게 스며 있는 사람들. 그들과의 관계는 설명보다 존재 자체로 의미가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서로의 곁에서 담담하게 마음을 나누며 함께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와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게 한달음에 달려온 그녀가 남긴 따뜻함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관계의 결과였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선물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든든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