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처럼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가까운 친구든, 가족이든 상관없이. 나의 기대만큼 다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상처를 입는다. 기대는 마음을 열게 하지만, 실망은 마음을 소리 없이 닫아버린다. 누가 들어오지 않도록 꼭꼭 잠그는 것은 다시는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리는 날. 무언가를 먹고 싶지도,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은 그런 날이었다. 그저 익숙한 거리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떡볶이집 앞에 멈춰 섰다.
어묵과 달걀, 김말이가 버무려진 떡볶이보다 더 강하게 끌렸던 건 그 집에서 흘러나온 음악 때문이었다. 맛있는 떡볶이와 튀김 냄새보다도 먼저, 음악 소리에 마음이 걸렸다.
'음악.... 참 좋다 ‘
떡볶이와 재즈라니,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감미로운 선율.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귓가를 스치는 그 음악은, 마치 "괜찮아, 괜찮아"하고 다정히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그냥 지나치려 했다. 하지만 발걸음이 돌아서는 그 순간, 마음이 다시 돌아섰다. 떡볶이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 음악 때문이었다.
돌아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떡볶이 2인분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말랑말랑한 떡에 소스를 듬뿍 묻히며 "떡 두 개는 서비스예요"라고 했다. 좋은 음악만큼 사장님의 넉넉한 마음을 느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도 저 떡처럼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을 때, 너무 많은 말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론 한 곡의 음악처럼, 말없이도 다가오는 무언가가 마음을 열게 한다. 다정한 눈빛, 진심을 담은 인사, 조용히 건네는 말 한마디. 그런 소소한 순간들이 꼭꼭 닫힌 마음의 문고리를 조금씩 움직이게 한다.
마음이란 건 생각보다 약하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해서 예측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 경계에서 누군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줄 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마음이 열릴 수 있다. 마치 오늘 그 음악이 나를 붙잡았던 것처럼.
그러니, 실망으로 굳어버린 마음에도 여전히 따뜻함이 살아 있기를. 말랑한 떡볶이처럼, 다시 말랑말랑해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다가올 수 있도록, 아주 조금씩이라도 문을 열어두기를.
떡볶이를 산 것은 작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다시 말랑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실망과 상처로 인해 조용히 닫아두었던 문이, 누군가의 다정한 음악에, 따뜻한 눈빛에 다시금 열릴 수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 주었다.
닫힌 마음 앞에서는 다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말랑말랑한 온기로 다가가면 된다. 말없이 곁에 있어 주고, 진심을 담아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도 빼꼼히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