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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비가 만들어준 트레일러닝

숲 속에서 만난 소나기

by 리베르테

운동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몸에 고정된 습관으로 배어든 줄 알았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면 자연스럽게 운동복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내 모습이 익숙했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던 시간이 꽤 오래 이어졌기에 이제 내 몸에 안전띠를 장착하듯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여행을 다녀온 뒤, 이른 아침 운동이 예전처럼 잘되지 않았다. 생활 리듬이 어긋난 탓인지, 몸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꼭 아침이 아니더라도, 시간대를 바꾸어가며 계속 몸을 움직였다. 집 근처 산등성이 둘레길을 걷고, 천변을 따라 걷거나 가볍게 뛰기도 하면서 멈추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오는 8월, 한강 나이트워크 42K에 참가하기로 마음먹고 신청까지 해둔 상태였다. 목표가 생기자 자연스럽게 걷는 양도 늘어났다. 운동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내가 잘 살아내고 있다는 걸 증명해 주는 무엇처럼 느껴졌다.


며칠 동안 걷고 뛰기를 평소보다 양을 늘렸더니 몸에서 신호가 왔다. 여기저기 근육이 뭉치고, 몸이 조금 무겁고 피곤했다. 오늘은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몸은 어느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동작으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 순간 '이런 것이 습관이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이끄는 대로 억지로 나오긴 했지만, 숲길을 걷다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고,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릴 때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땀을 흘린 뒤 밀려오는 시원한 감각은 마음까지 경쾌하게 만들어주었다.


오늘은 국사봉 누리길을 걸었다. 이 길은 7.6km 정도 되는 코스로, 대략 2시간쯤 걸린다. 짧은 등산 같은 느낌도 있고, 동시에 산책의 여유도 함께 느낄 수 있어 내가 참 좋아하는 길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섞여 있고, 숲길로 둘러싸여 있어 마음까지 편안해지고, 걷다 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오늘은 걷는 도중 갑자기 비가 내렸다. 처음엔 나뭇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톡톡 가볍게 들리더니, 이내 후드득, 후드득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순간 '이 참에 비 맞으며 시원하게 걸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나뭇잎을 건드리자 숲의 향기가 짙어졌다. 그러자 숲 속이 평소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뭔가 정화되는 기분이랄까. '아, 좋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비를 맞고 걸어보자!'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빗방울은 금세 더 굵어졌고,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부터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를 피하려는 몸의 반응이었지만, 점점 속도가 붙었고, 어느새 나는 달리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비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트레일러닝이 시작된 것이다.


비를 맞으며 달리는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후련해졌다. 어릴 적 여름 소나기 속을 뛰놀던 기억도 났고, 지난여름 남편 그리고 친구와 함께 우중런을 하고 돌아와 마당에서 신나게 체조를 하며 깔깔대며 웃었던 날이 생각났다. 비를 흠뻑 맞고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었다. 모든 좋은 추억은 예기치 않게 갑자기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 비처럼.


나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보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나에게, 오늘 이 비는 자연이 건넨 작은 선물 같았다. 운동이 단지 몸을 단련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이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때론 예기치 않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 나는 비를 맞으며 걷고, 또 달렸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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