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오늘 아침, 창밖으로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에 잠겼다.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이 시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시간은 흐르고, 나는 이 소중한 순간들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걸까. 마침 2층에서 내려오는 아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엄마랑 앞으로 이렇게 단둘이 3개월을 함께할 시간이 또 올까?"문득 든 생각을 아이에게 물었다.
"앞날은 알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또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
"나중에 엄마가 같이 여행하자고 하면 그때도 함께 한다는 거지? “
"그럼요! “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내가 손을 내밀 때마다 주저 없이 함께해 준 아이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함께할 수 있을까? 이 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따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때로는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으로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나의 생각과 기대를 강요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넘어, 어느새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가 되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시간이 따로 흘렀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리듬이 맞아갔다. 아이가 운동하러 나가는 동안 나는 맨몸운동을 하고, 아이가 돌아와 씻고 아침을 준비할 때 나는 공원을 산책했다. 그렇게 함께 아침을 먹으며 하루를 계획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이곳에서 아이는 다양한 작업을 해내며, 꾸준한 습관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해 준다는 믿음을 키우고 있었다.
오랜만에 맑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매서운 바람도 잦아든 날이었다.
"우리 오늘 커피 마시러 갈까? “
문득 아이에게 제안했고, 아이는 웃으며 동의했다. 바깥은 여전히 눈이 덮여 있었고,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어야 했다. 마치 도화지 위에 그려진 지도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다행히 주택가 앞 인도는 이웃들이 눈을 치워 길이 나 있었다. 따뜻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스타벅스와 팀홀튼 중 고민하다가, 인디고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서점에 들러 그림책과 요리책 코너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내용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림과 요리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몇 계단 올라가자 도서관처럼 차분한 공간이 펼쳐졌고, 긴 탁자와 편안한 소파가 놓여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일상의 여유가 느껴졌다.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가서 따뜻한 커피를 주문했다. 매장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붐볐다.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도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따뜻한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가 최근 작업한 영상을 함께 보았다.
아이의 본업은 음악이지만, 이곳에서는 놀랍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열정과 도전정신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디지털 세대인 아이와 아날로그 세대인 나와의 차이를 실감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배워가는 즐거움을 느꼈다. 아이의 작업물을 보며 느낌을 공유하고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아이는 예술과 생계의 균형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훌륭한 예술을 만드는 것과 자신을 부양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예술이 우선이다.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을 찾아라. 생계가 달려 있으면 성공이 더 어려워진다.”라는 릭 루빈의 말이 아이에게 큰 동기가 되었다고 했다.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이 생계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부모로서 아이가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지지해 주고 싶었다.
때로는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한 순간들이 숨어 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우리 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어떤 성장의 씨앗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이 순간이 따뜻한 기억으로 남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앞으로의 길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