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
아버지가 없었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나는 아버지를 모른다.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가족을 떠올릴 때면 내게는 엄마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누구보다 나를 아껴 주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말해 준 엄마 덕분에 어릴 때는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가끔은 문득문득 부러웠다.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일날 아빠랑 케이크를 자르며 즐거워하는 모습, 아빠가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거나 안아주는 모습.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런 순간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엄마의 유난스러운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으니까.
빈자리가 남긴 것들
살다 보면 알게 된다. 결핍이라는 건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그 ‘없음’이 남긴 흔적이다.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사실은 내 일상 속 크고 작은 순간들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학교에서 가족을 소개하는 숙제를 할 때, 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로만 글을 채우면서도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유난히 서운해지거나, 누군가 나를 쉽게 떠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 감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아버지의 부재가 나를 억눌렀고, 어느 순간 나는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을까? 왜 나는 평범한 가정을 가질 수 없을까? 세상은 불공평해 보였고, 나는 화가 났다. 반항심이 커졌지만 엄마한테는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극도로 꺼렸고, 나도 차마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단 하나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부모다. 그러니 그 문제로 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를 억누르던 감정이 서서히 풀어졌다. 그래, 내 탓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없는 것을 붙잡고 괴로워하기보다는,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꿈꿨다. 나만의 따뜻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안정적이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집을. 드라마 속 다정한 아빠처럼,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결핍이 가르쳐 준 것
예전에는 몰랐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진짜 원한 건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는 걸.
아버지가 없었기에, 나는 사랑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았다. 사람의 온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없었기에, 나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안의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없었기에, 나는 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중에 나의 가족에게는 따뜻한 기억만 남겨주고 싶었다. 사랑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결핍이 곧 불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빈자리가 나를 더 단단하게,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부재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나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기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앞에 놓인 삶을 바라보며, 내가 꿈꿔온 따뜻한 가정을 만들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내 과거를 받아들이고, 내 안에 남아 있는 사랑을 더 크게 키워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그 ‘없음’이 남긴 흔적은 내 안 깊숙이 똬리를 틀고, 언제든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