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은 오빠, 사랑받은 나

사랑을 주는 사람

by 리베르테

어릴 때부터 우리 집 분위기는 조금 이상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당연하던 시절, 우리 집에서는 반대였다. 엄마는 오빠보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했다. 오빠는 늘 혼나고 미움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것.


엄마는 대놓고 말했다. “넌 아빠랑 똑같아.”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저 나에게 다정한 엄마의 사랑이 고마웠다. 나에게 예쁜 원피스를 입혀 손을 잡고 함께 다니는 걸 좋아하셨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도 엄마 무릎에 앉혀 밥을 떠먹여 주었다. 동네 사람들한테 여자아이를 그렇게 버릇없이 키운다고 많은 말을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고 하셨다. 내가 오빠와 싸울 때면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셨는데, 어린 마음에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오빠가 속상하고 억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나는 그 눈빛을 외면하고 싶었다.


오빠는 엄마에게 혼날 때도, 내가 더 좋은 것을 받을 때도, 나에게 화를 내거나 질투를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먼저 챙겨주었다. 무조건 나에게 먼저 양보했고, 비 오는 날엔 내 우산을 먼저 펼쳐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사랑받은 나, 외면당한 오빠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빠와 엄마의 관계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은 오빠를 볼 때마다 그 감정을 떨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빠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오빠를 야단칠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빠가 서럽게 방으로 들어갈 때, 나는 따라가서 위로하지 못했다. ‘엄마한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빠가 내게서 멀어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친절해졌다. 오빠는 언제나 내 편이었다. 동네 남자아이들이 짖굳게 굴 때면 가서 혼을 내주었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먼저 챙겨주었다. 그 모습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함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고향집에 가면 엄마랑 오빠는 내게 손하나 까딱 못하게 했다. 정말이지 아무런 일도 못하게 하고 푹 쉬라고만 했다.


어느 날 오빠 차를 타고 가던 중, 내가 커피가 마시고 싶다고 차를 세워달라고 부탁했다. 오빠는 차를 세운 뒤, 나에게 내리지 말라고 했다. 찻길이라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그럼에도 오빠는 후다닥 뛰어가서 커피를 사오더니 나에게 건넸다.


내가 바닷가에 다녀와 신발에 모래가 잔뜩 묻어 있으면 오빠는 신발을 물로 깨끗이 닦아 주었고, 퇴근해 돌아올 때면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나 감자떡을 사오곤 했다. 오빠는 늘 그렇게 나를 챙겼고, 나는 늘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오빠에게 더 미안했다.


미움을 받았지만 사랑을 주었던 사람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가 편찮으실 때, 나는 솔직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상황도 그렇고 엄마를 간병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오빠는 아무 말 없이 엄마 곁을 지켰다.


어릴 때부터 엄마는 오빠를 미워했다. 아니, 미워했다기보다 원망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오빠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고, 그 기억이 엄마를 아프게 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오빠에게 유독 차갑고 무심했다. 하지만 엄마가 나이가 들고 아프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곁에서 지킨 사람은 다름 아닌 오빠였다. 약을 챙겨주고, 밤새 간병하며 엄마 곁을 지켰다.


어느 날, 엄마가 오빠에게 조용히 말했다.


"고맙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속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평생 원망만 했던 아들에게 처음으로 건넨 진심 어린 감사. 오빠는 늘 그렇듯 당연하게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오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밉지 않아? 왜 그렇게까지 해?”


오빠는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엄마니까.”


그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나는 사랑받은 쪽이었지만, 정작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오빠였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도, 오빠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자신을 미워했다는 걸 알면서도, 오빠는 엄마를 끝까지 돌보며 곁을 지켰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나보다 오빠가 더 많이 슬퍼했다. 조용한 상가에서 오빠와 나는 지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몰랐던 엄마 이야기를 오빠는 많이 알고 있었다. 하물며 엄마 첫사랑 이야기까지 알고 있어서 많이 놀랐다. 엄마를 회상하는 오빠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어떤 말도 부족했고, 미안한 생각만 들었다. 둘이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빠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서운함을 표현하지도, 억울하다고 하지도 않고, 묵묵히 감당하는 사람이었다.


미안함보다는 따뜻함으로


오빠는 여전히 내게 잘해준다. 명절이면 먼저 전화를 걸어오고, 우리 두 아이들을 챙기고, 내가 싱싱한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오징어, 문어, 도루묵과 가자미 이것저것 챙겨 다 먹지도 못할 만큼 보내준다. 그렇게 말없이 행동으로 그 마음을 표현한다. 그냥 무뚝뚝하게 “맛있게 먹으렴” 그 한마디 뿐, 감정은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오빠에게 부채감을 느낀다. 어릴 적부터 가졌던 그 미안한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미안함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 단순히 ‘미안해’라는 말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오빠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따뜻한 행동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어릴 땐 몰랐지만, 세상을 살아보니 알겠다. 가족이란 꼭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걸.

오빠는 그걸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라도 나도 배워야겠다.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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