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달리기
2024 경주국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경주로 향하며, 오송역에 도착했을 때 기차역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설레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 중에도, 나처럼 경주로 가는 마라톤 참가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에 도착하니, 그동안 화면으로만 만났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특별했다. 얼굴과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고, 글로 나눈 이야기 덕분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와 시선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했다.
기차역에서 기다리던 일행과 함께 미리 정해둔 황리단길의 숙소 ‘소설재’로 향했다. 도착하니 또 다른 일행이 비를 피해 처마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마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과 그들의 소녀처럼 해맑은 표정이 잘 어울렸다.
소설재는 입구부터 아늑한 분위기를 풍겼다. 마당 중앙에 아담한 소나무가 든든히 서 있었고,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우물이 옆에 있었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듯한 느낌이었다. 방과 방 사이에는 편안히 쉴 수 있는 대청마루가 있었고, 그곳에 앉아 바라본 마당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금오방’과 ‘옥적방’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방에서 여정을 풀었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황리단길의 식당으로 갔다.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은 다양한 반찬과 맛에 놀랐다. 좋은 사람들과의 분위기에 취해 과식했다. 숙소로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동궁과 월지’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도 데이트하는 사람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붐볐다. 천천히 거닐며 감상한 동궁과 월지의 밤 풍경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모든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다.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시간과 장소는 달리 다가오는 것 같다. 산책하는 동안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런 날씨라면 내일 우중 런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는 일이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비 오는 날 달리기를 다시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바람이 이루어질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서둘러 마라톤 출발 집결지로 향했다.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임시로 마련된 먼 곳에 차를 세워두었다. 마라톤 주변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음악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마치 축제장 같았다. 만 이천 명의 참가자 수에 놀랐고,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나는 아직 마라톤 초보 단계인데, 풀코스와 하프 코스를 뛰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에너지를 느꼈다.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출발선에 서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달린다는 생각에 설렜다. 비 오는 날의 달리기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힘도 덜 들고 후련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비가 오면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더 든다. 산다는 것이 어쩌면 달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를 향해 달리다가 힘들면 잠시 쉬기도 하고, 걷기도 하며 다시 기운을 내어 달리는 모습이 사는 것과 닮았다.
출발 신호와 함께 달렸다. 비에 젖은 도로가 반짝이고, 발걸음마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헉헉대는 사람들의 숨소리와 발소리가 어우러져 물장구치는 아이처럼 신나게 달렸다. 달리는 도로 주변의 응원 소리가 힘을 북돋아 주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남기는, 비 오는 날의 마라톤은 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이었고, 힘든 시간을 함께 극복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