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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여름 Nov 15. 2024

[수능 D-day] 엄마 해방의 날

수능 끝났다고 육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수능 편지는 오늘로 마지막

드디어 수능 디데이.


너는 조금 먼 수험장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10시였나, 10시 반에 잠잔다고 인사를 했고,

엄마는 이런저런 재료 준비를 마치고 12시에 잠들었나 봐.


도시락을 싸려고 5시 알람을 맞췄고, 6시 반에 너를 깨우려고 두 번째 알람을 맞췄어.


다행히 5시에 눈이 떠졌고, 커피 한잔 마신 후 도시락 준비 시작했고, 너도 6시 반에 한 번만에 일어났고,

평소보다 일찍 나와서 출발도 제시간에 착착.


차 타고 가는 길에 노란색 버스에 “수험생 수송 차량” 보고 신기해하기도 했지.

늦으면 경찰 오토바이 출동하기도 한다고 추억의 뉴스 이야기도 하면서 가볍게 수험장으로 향했어.

수험장 앞이 1차선 좁은 도로라 많이 막혔는데, 가까이 갈수록 교문 앞에 여러 학부모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어. 


엄마는 가볍게 차에서 인사하고 한다고 했지. 너는 끝나고는 혼자 집으로 오겠다고 말하고 차에서 내려갔어. 

내리고 보니 교문 앞에서, 맞은편에서 이미 들어간 자녀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몇몇 부모님들이 보이더라. 


엄마는 감상에 젖을 새도 없이 10시에 있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돌아갔고, 

오늘까지 휴가를 내서 화상으로 참여하고 나서 낮잠을 조금 잤어. 


할머니께서는 수능 기도회에 참석하신다고, 너의 이름이 인쇄된 어느 교회 인쇄물을 찍어 보내셨어. 

40여 명의 아이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수능 시간에 맞추어 하루 종일 기도를 하는 모임이라는 것은 

4교시 영어 시험 시작 시간과 함께 인쇄된 기도문 내용이 적힌 인쇄물을 또 보내셔서 알았지 뭐야. 


당일에 교문을 잡고 기도하신다는 분, 절에서 백팔배 하신다는 분들 뉴스에서만 봤는데, 할머니도 그중의 한분이었어. 손주를 위한 사랑 표현의 방식이니 감사히 여길 밖에. 


시험을 끝나고 온 너는 저녁을 안 먹겠다고 하고, 방에 들어가서 쉬겠다고 했고, 

엄마는 차마 잘 봤냐고 물어보진 못했지. 

뉴스에서 이번 수능은 쉬운 편이었고, 특히 국어와 수학은 쉬웠다는데, 

아무리 그런 평가가 있어도 내가 못 보면 소용이 없고, 그런 뉴스가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  


한참 뒤에 나와선 재활용 버리는 날을 묻더니, 방에 있는 문제집, 책을 다 버리겠다고 해서, 

속으로 시험 잘 봤나 보다 생각했는데, 

이 기회에 엄마 학생 때부터 쓰던 네 책상도 처분하자고 했더니, 내년에 써야 할지도 모른다고 씩 웃는 거야. 

조금 헷갈리더라. 


동생이 돌아오고 모처럼 셋이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실컷 나누었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은 마치 흑백요리사의 안성재 셰프 같아" 말해서, 

엄마가 "네가 흑백요리사를 어떻게 알아? 추석 즈음에 나온 새로운 넷플릭스 시리즈인데" 했고 ㅋㅋ 

수험생이 이걸 봤으면 안 되는 건데, 의심의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다 내려놓았지. 


의외로 시험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고 했고. 

수능을 망친다고 네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어. 


바람직한 인생의 태도인 것은 맞는데, 그런 얘기는 학생인 네가 하는 게 아니라, 엄마인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고개가 갸우뚱 해지고, 정말 이 친구, 시험을 어떻게 본 것인가 궁금증이 커져만 갔어. 


그래도 뭐, 시험 못 봤다고 울고 자책하고 방문 걸어 잠그는 것보다는 

너답게 헤쳐나가는 모습이려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험 장소에 잘 도착하고, 도시락도 잘 쌌고, 네가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비로소 엄마는 크게 안도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어. '이제 해방이다!' 

수능이 끝난다고 육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2년간의 초-중-고 과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고, 

결과와 상관없이 이제 내년부터는 성인으로서 점점 독립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 

그럼 의미에서의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어.    


긴장 안 했다고 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모든 너의 과정들에 대해서, 

너무 고생 많았다고, 잘했다고 박수쳐 주고 싶었어. 


이제 조금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고, 수능 이후의 삶을, 고등학교 졸업 이후의 삶을 계획해 보기를. 

엄마도 이제 여행도 다니고, 공연과 전시회도 더 마음껏 보러 다니고, 

천천히 하고 싶은 것들, 모두 해보려고 해. 


너는, 이제, 자유다! 

(나도, 이제, 자유다! ㅋㅋ) 



100일 동안 썼던 수능 일기를 마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수능 편지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이제 다른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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