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지] 꾸밈노동

저 가방 진짜야, 가짜야?

by 낯선여름

“저 가방 진짜야, 가짜야?”


게이트 업무가 끝나고 다른 게이트로 옮겨가는데 내 뒤통수에서 들려온 말이다.


신입사원 연수 면담에서 화물을 가겠다고 우겼던 김사원은 결국 인천국제공항으로 배정되었다. 집이 강동구 명일동이었는데 출근하는 것부터 막막했다. 개항한지 얼마 안된 공항은 세련되고 멋졌지만 그곳을 매일 출근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이었다. 버스 노선이 확정되지 않아 함께 근무하는 동기 1명 차에 4명씩 조를 짜서 출근을 했다.


김사원을 놀라게 한 것은 그 뿐 만이 아니었다. 대학생 시절까지 치마를 입어본 적이 별로 없는 김사원에게 치마 유니폼이 지급된 것이었다. 바지 유니폼이 있었는데 몇 벌 만들지 않아 재고가 떨어졌고 언제 입고될지 모른다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치마 유니폼에 커피색 스타킹과 구두, 쪽진 머리에 서툰 화장을 하면 업무가 시작되었다.


교육 받을 당시 담당 과장은 출근할 때도 우리가 이 회사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정장을 입으라고 했는데 출근하는 날 정장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편한 차림으로 와서 탈의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거울이 있는 일렬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고치거나 머리를 다시 빗었다.


화장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김사원도 비슷하게 흉내를 내며 화장을 해 보았지만 선배들에게 화장은 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염색을 하거나 파마를 한 동기들은 선임 여자 과장에게 욕을 먹고 하루 만에 풀기도 했다. 화장을 잘하는 동기 한 명이 다가와 도와주겠다고 그녀의 파우치를 꺼내 똑같이 화장을 해준 적도 있었다. 업무가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달려가 빨간 루즈부터 지웠다.

공항에는 김사원 같은 대졸 공채 직원도 있었지만 인턴직원과 서비스전문의 직원들도 있었다. 하는 일은 똑같았다. 인턴 직원은 대졸 공채 여직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대졸 직원은 한참 어린 인턴 직원에게 ‘선배님’ 호칭을 붙이며 그들의 눈 밖에 나서는 안됐다. 하루하루가 힘든 직원들은 조직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서로를 질시하곤 했다.


여성이 주로 모여있는 그 곳에서는 자주 화장품이나 가방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 인턴 선배는 정직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 BMW를 타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사원은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놀랍고도 슬픈 얘기였다. 이런 곳이 사회인가 싶어서, 이런 대화를 하는 공간에 속해있는 것이 서글펐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뒤통수에서 수근거리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저 가방 진짜야?” 의심과 비아냥이었다. 나는 내 가방을 쳐다보았다. 학교 졸업하고는 적당한 가방이 없어 가끔 어머니 가방을 들고 다니곤 했는데, 가방 브랜드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의 수근거림으로 이 가방이 명품 가방의 가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얼굴이 화끈했다.


명품 브랜드 가방에 열광하는 분위기도 싫지만, 더 혐오했던 것은 모조품이라도 사서 들고 다니고 싶어 하는 욕망이었다. 그런 한편 백화점에서 본인을 위해 제대로 된 가방 한 번 사보지 못한 어머니가 친구분 통해 A급이니 하는 가방을 저렴하게 구해서는 똑같다고 기뻐하며 통화하던 목소리가 언뜻 기억나는 듯 했다. 누구를 욕하랴. 여러 욕망이 들끓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그 이후 그 가방을 들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된, 그녀만 잘 몰랐던 그 가방의 브랜드는 루이비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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