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they go low, we go high.
“엄마, 엄마는 요즘 뉴스 볼 때나 운전할 때, 불만의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
내가 그랬나? 부정하고 싶다. 아이들 앞에서 나쁜 말을 안하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랬나?
잠시 생각해보니, 특히 운전하고 갈 때 마음에 안 드는 현수막을 볼 때 더 그랬던 것도 같다.
“그렇게 느꼈어? 음... 그건 그들이 혐오의 말을 하기 때문이야. 엄마가 조금 치우친 것 같아?"
" 응. 아주 많이 "
아이가 이렇게 말하니 더더욱 부정하고 싶다.
“엄마는 무슨 운동권 (이런 말을 아는지?)도 아니고, 지금도 뉴스 잘 못보고 (자랑은 아니지만), 회사 다니고 너희들 키우고 하는 평범한 사람이야. 특별히 더 치우쳐 있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하는데, 혐오 발언 하는 것은 못 참겠어. 약자들에게 무례하게 하는 것도.
엄마도 여성으로서 약자여서이기도 하지만, 더 어렵고 힘든 약자들이 많거든. 돕지는 못할 지언정 피눈물 나게 하는 말과 행동들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아이는 듣고 있다가 내가 계속 내가 그래도 지나치냐고 물으니, 요즘따라 더 하나하나 따져서 비판하는 것 같고 그렇게 화내며(?) 말하면 불편해진단다. 그리고, 내가 자꾸 부정하며 다시 캐물으면 다음에 이런 얘기 솔직히 못한다고도 덧붙였다. 맞는 말이다.
“그래. 엄마가 조심할게. 엄마는 종종 너와 형을 친구처럼 생각해서 지나칠 때가 있는 것 같아. 아직 어린데 어른 친구처럼 생각한다니까. 그리고 어떤 편견도 같지 않길 바란다면서 엄마 또한 엄마 생각을 무의식 중에 강요하고 있었구나. 인정! 반성할께. 참, 지금처럼 용기있게 엄마에게 네 생각을 말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거야. 앞으로도 어느 곳에서 어떤 어른이 너의 말을 막으려 해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예의 있게) 네 의견을 이야기 해야 해"
치우쳐 있는 엄마는 계속 치우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너희들 앞에서 어른의 품위를 보여줄게. 너희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거나 생각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동은 극도로 삼가하도록 노력할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해서, 선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었으면 해서, 종종 가르져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 그런 욕심도 내려놓아야 겠지? 많이 가르친다고 많이 배우는 것은 아니니까.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서 배우는 것은, 늘 엄마인 내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