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회사생활] 미움받을 용기

퇴근 눈치 전쟁에서 승리하라

by 낯선여름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드디어 우리 회사에도 도입되었다. 선진(?) 회사에서는 진작 도입되었고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싶고, ‘회사 오래 다니고 볼 일이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참 작은 걸로 감사하는 나란 사람 ㅠ)


유연근무제가 정말 절실했던 순간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유치원 다니던 시절이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잘 되어 있으니 아침에만 보내면, 오후 늦게 아이들 오는 시간에만 돌보는 분을 구하면 되는데, 8시 반까지 출근을 해야하니 곤란했다. 아침 1시간을 위해서 오시는 분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종일 일하시는 분을 구해야 했다. 내 일당과 도우미 분의 일당에 대해 계산기를 수 없이 두드렸다. 구마다 운영하는 아이돌보미 사업이 생긴 이후에는 좀 나았지만 2시간이 기본이었고, 아침과 저녁에 다른 두 분을 고용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웠다. 30분만 늦게, 9시에만 출근해도 되면 좋겠다고 수 년 간 얼마나 바랬었던지. 그 아이들이 훌쩍 커서 나에게는 필요없지만, 아이 키우는 후배들에게는 정말 도움이 될 것이다.


기존 출근은 8시 반, 퇴근은 (공식적 명시적으로) 5시 반이었다. 이상한 것은 8시 반 출근은 안 지키면 큰 일 나는데, 입사한 이래 5시 반에 퇴근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출근은 8시 반에 하는 사람도 없었다. 25분부터 체조방송이 시작되므로 8시 정도에는 모두 와 있었다. 7시에 퇴근해도 눈치 보며 퇴근해야 하는 부서도 있었다. 나 또한 매일 매일 거의 12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며 일했다. 저녁까지 회사 사람들과 먹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게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매일 일찍 퇴근하는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회사에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다. 적고 보면 답답해 보이지만, 아직도 일부 부서에서는, 일부 회사에서는 이렇게 지내고들 있을 것이다.


나는 2021년에 현재 부서로 전근을 왔는데, 2020년대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젊은 친구들이 많은 부서여서인지,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우리 부서는 저녁까지 회사에서 먹으며 야근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출근 경쟁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출 퇴근 외에도 식사 시간 등도 자유로운 편이었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등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확실히 일과 개인의 삶의 조화를 꿈꾸는 세대들과 일하는 기쁨이 있었다.



유연근무제는 7시 반, 8시 반, 9시 반, 10시 출근까지 4가지 타입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아직 완벽한 형태의 유연근무제는 아니다). 도입 초기,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꿈꾸며 이른 출퇴근 타입 (7시 반 출근, 4시 반 퇴근)을 선택하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좋았다. 한 가지 걱증은 과연 4시 반 퇴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였다. 십여년 전, S 회사에서 도입했다가 아무도 4시 반에 퇴근 안하고 근무 시간만 길어져서 실패한 근무 형태였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다른 팀은 몰라도 우리 팀은 희망이 있다고 했다. 평소에도 퇴근 시간이 되면 칼같이 일어나는 후배가 있어서 스타트를 끊어 줄 거란다.


그 후배도 이른 출근을 택했는데, 4시 반에서 1분도 더 늦지 않게 발걸음을 뗄 거라로 했다. 그는 퇴근 시간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그는 “우리에겐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해요”라고 했다. 이 말이 너무 멋져서 그 때부터 나는 이 후배를 (조금 길지만) ‘미움받을 용기’라 칭하게 되었다. '미움받을 용기'는 정말 그 이름에 걸맞게,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었다. 4시 반이면 1분의 오차도 없이 자리를 떴고, 나머지도 1분 간격으로 자리를 떴다. 뭐 이런 멋진 행렬이! 우리 이른 출퇴근 조는 우리가 늦으면, 5시 반 퇴근, 6시 반 퇴근 동료들도 눈치를 볼 것이니 우리의 사명이 컸다(!)


그렇게 우리 부서는 '미움받을 용기' 덕분에 전사적으로도 유연근무제를 잘 정착시킨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다. (물론 팀원들 입장. 윗분들의 생각은 안물 안궁 ㅎㅎ)


그 투쟁의 열매는 달콤하나니, 우리는 무려 월급쟁이면서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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