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편선착장과 서편 선착장을 연결하는 마을 신작로를 잠깐 오르자 경차가 겨우 지나갈 정도 골목길 사이를 마을회관과 보건소가 골목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뒤에 교실 두 칸 정도의 크기로 지금은 폐교된 돌산초등학교 송도분교가 자리하고 있다. 운동장 크기가 어지간한 아파트 놀이터만큼도 되지 않는다. 폐교된 지 10여 년, 운동장은 어르신들의 운동기구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골목길로 나와 교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숫몰랑으로 향한다. 온통 칡넝쿨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도 한동안 이 길을 다니지 않아 선착장에 만난 마을 어르신들은 못 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이미 들어선 길이니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어차피 데크로 잘 정비된 등산로를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가파른 탓도 있겠지만 칡넝쿨이 발을 떼기가 무섭게 발목을 잡는다. 위쪽을 올려다보니 여기를 왜 '몰랑'이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몰랑'은 산 꼭대기나, 중턱, 고개의 평평한 곳을 말하는 여수 사투리다. 비슷한 말로 '몬당'이 있다. 유독 송도에는 지형 때문인지 지명에 몰랑이 많다. 숫몰랑을 비롯해, 목몰랑, 작은몰랑, 동구지몰랑. 다른 섬들은 산꼭대기가 뾰족한 모양이 많으나 송도는 섬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제주 마라도나 가파도만큼은 아니지만 멀리서 보면 평평해 보인다.
밭은 이미 칡이 점령군처럼 들어섰다. 과연 여기가 밭이었나 싶을 정도다. 깔끄막 진 경사에도 옛사람들은 어렵게 밭을 일구었다. 시골 어디를 가보아도 버려진 밭들이 천지다. 송도도 예외일리 없다. 농사짓는 밭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업을 생업으로 하다 보니 밭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어렵게 숫몰랑에 도착했지만 기대했던 풍경은 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 말에 의하면 숫몰랑 아이들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넓은 잔디밭이 있어 봄이나 가을이 되면 매번 소풍을 왔던 곳이자 가막만과 자봉도, 백야도가 한눈에 들어와 경치가 일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 적이었는지 알 수 없다.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조차 찾지 않은 숫몰랑만 확인한 채 올라왔던 길 반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서편 선착장에는 폐어선과 어구들이 선착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막만 쪽으로 열려 있는 작은 선착장이지만 이곳도 한 때는 고대구리며, 장어, 문어, 낙지 잡는 어선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것이다. 송도는 여수에서 단지를 이용해 문어를 잡는 문어단지 배와 가두리양식을 주변 섬들 중에서도 제일 빨리 시작했다고 했다(물론 확인할 수는 없다).
다시 마을 골목길을 올라 보건소가 있는 뒷길을 따라 작은몰랑으로 오르니 평평한 능선이 동구지몰랑까지 이어진다. 큰몰랑과 달리 작은몰랑에는 나무 한 그루 찾기가 쉽지 않다. 어지간한 땅은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었으나 지금은 드문드문 깨와 방풍을 심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작은몰랑에 올라서니 큰몰랑에서 보지 못했던 사면의 바다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해 질 녘 가막만 노을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가막만 끝으로 여수 시내가 아득하게 다가온다.
작은몰랑에서 목몰랑쪽으로 내려오니 손에 잡힐 듯 화태대교와 장구섬이 자리하고 있다. 물이 나면 장구섬과 연결된 곳을 목이라 하여 마을 사람들은 주변에서 조개를 캐거나 멱을 감았다. 지금은 가두리양식장이 장구섬 주변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장구섬과 관련해 마을에 전해 내려 오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전 이곳에 목씨부인이 살았는데 장구를 아주 잘 쳤다고 한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도 마을 사람들 말로는 '장구쟁이'들이 송도에 많다고 했다. 그게 장구섬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돌산도 마찬가지지만 송도 또한 오래전부터 물이 부족했다. 지금은 돌산에서 수도관로를 끌어와 사용하지만 섬사람들에게 물은 생명수와 같다. 바람도 피하고 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은 언제나 집이 들어섰고 마을을 이루었다. 동네를 일컫는 '마을 동(洞)'은 한 우물을 먹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가족 다음으로 옛사람들은 마을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돌산읍지에는 송도에 처음 입도한 사람이 진주 강씨, 김씨, 박씨, 고씨 순이라고 했다. 지금도 송도에는 이러한 성씨를 가진 사람이 많다. 한 때 어업이 활성화되었을 때 송도에는 700명이 넘는 사람이 살았다. 섬 규모를 치면 엄청난 숫자다. 그때는 그 좁은 골목과 갱번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대신 밤낮없이 울어대는 왜가리 울음소리만이 적막한 송도를 가끔씩 깨우고 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돌산항으로 향한다. 돌산과 직선거리로는 불과 3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섬이지만 섬은 섬이다. 걸어서 갈 수 없고 차 타고는 더더욱 갈 수 없기에 심리적 거리는 자봉도나 월호도나 두라도나 금오도나 횡간도나 모두 매한가지다.
돌아오는 길 나룻구지를 보며 이곳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나룻배가 오고 가며, 사람들이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