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키워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어렸을 때는 그냥 어른들의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중2 아들과 초등 5학년인 딸을 키우다 보니 어른들의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어렴풋이 나마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른도 사람이라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들을 보고 있노라면 때론 서운하기도 때론 머리끝까지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내색하지 않을 뿐...
한 번은 부산에 여행을 갔을 때다. 큰 애가 일곱 살이었다. 책방 골목을 돌아보고 나니 허기가 져 근처 중국집에 들어갔다. 볶음밥을 시킨 나는 짜장면을 맛있게 먹던 아들 녀석에게 아빠 한 젓가락만 달라고 하니 그릇을 한 팔로 감싸는 것이 아닌가. 어찌나 얄밉고 서운하던지... 그리고 난 후 아내에게 내가 한 말,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네"였다. 하하. 지금도 멋쩍게 웃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참 키 클 나이의 아이들을 위해 여름 방학 동안 고기를 사다 날랐다. 구워 먹고 삶아 먹고, 볶아 먹고 그것도 모자라 처갓집에 가서 밥이라도 먹을라치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한창 키 클 나이 손주들을 위해 시장에서 쇠고기며 돼지고기를 사다 날랐다. 그래서 아이들의 여름 밥상에는 고기반찬이 빠지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이들은 생선이나 채소보다 고기를 훨씬 좋아한다. 그 덕에 아이들은 어느덧 아빠와 엄마 키를 넘어섰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인생 삼겹살(?)은 군대에 있을 때 휴가 나와서 먹었던 삼겹살이다. 운 좋게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된 나는 주말 외박에도 여수에 올 수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삼겹살 한 근을 단골 정육점에서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다. 그러면 나는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에서 봉지째 삼겹살을 가져다가 프라이팬에 넣고 기름째 구웠다, 아니 튀겼다. 바삭하게 튀겨진 삼겹살에 밥과 김치를 곁들이면 이보다 행복할 수 없었다. 20여 년 전, 내 기억으로 삼겹살 한 근에 4,500원이었다.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가격이지만 4,500원이면 부러운 게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난 후, 그때 나에게 맛있었던 삼겹살이 엄마에게도 맛있는 음식일 거라는 생각을 아이들을 키우면서 문득 하게 됐다. 시장 갔다 오니 한 점도 남김없이 먹어치운 아들 녀석이 괘씸하지 않았을까? 나처럼 아들 녀석에게 서운하진 않으셨을까? 내 기억에 어머니가 고기 드시는 기억은 찾을 수 없다. 왜 일까? 어머니가 고기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어머니는 틈만 나면 관절이나 신경통에 기름진 음식이 안 좋다며 짜장면이나 돼지고기, 닭고기를 되도록 먹지 않으셨다. 그때 나는 그런가 보다 하며 그냥 넘겼었다. 그래서 가끔 어머니 집을 찾을 때나 함께 식당을 찾아 가족끼리 밥을 먹을 때면 오리불고기가 단골 메뉴였다. 이유는 단 하나 오리가 나이 든 사람에게 좋다는 것 때문에...
그런데 칠십이 훨씬 넘으신 어머니는 최근 부쩍 고기를 찾아드신다. 면요리도 좋아하시고 가끔 사 가는 닭강정이며, 돼지고기도 예전 같지 않게 맛있으시다며 무척 잘 드신다. 한 번은 쇠고기를 사서 구워드렸더니 진짜 맛나다며 좋아하셨다. 생각해보면 관절이나 신경통이 그 전보다 지금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으실 텐데...
그러니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이제 어머니는 틀니를 끼시고 좋아하는 고기를 잘게 잘나서 꼭꼭 씹어 드신다. 소화가 안되니 양 것 드시지도 못한다.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대부분의 자식들은 함께 살아온 시간 때문에 부모님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게 뭐지 혼자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어머니를 잘 안다는 생각은 나의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나는 그저 정머리 없는 무뚝뚝한 아들일 뿐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어머니 집에 갈 때 되도록 고기류나 맛난 것을 사 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맛나게 드시는 어머니를 보면 이상하게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만큼 흐뭇해진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