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나 수많은 서사(敍事)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도시로서 존재하기 위해 모든 도시에서 서사는 필수다. 더 나아가 서사 없는 서정은 있을 수 없다. 여수가 서정적으로 느껴진다면 다 그만한 서사와 이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여수가 걸어온 길, 다시 말해 여수만의 서사는 여타 도시와 비할 바가 아니다. 여수의 역사는 여수의 해안선만큼이나 굴곡져 있다. 바다는 오늘도 풍화되고 침식되어 굴곡진 해안에 몸을 부딪치며 잠든 여수를 깨우듯 출렁이고 있다.
삼국시대 여수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편입되기를 거부한 최후의 저항지였다. 고려 말에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기를 들어 조선시대에만 세 번이나 폐현과 순천 복속, 다시 복현되는 '삼복삼파'의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가 하면 임진왜란 때는 전라좌수영이자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순신과 함께 나라를 지킨 구국의 성지이기도 했다. 구한말 거문도사건과 동학농민운동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등 여수는 언제나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해방 후에는 제주 4.3 진압을 위한 파병 명령에 동포를 죽일 수 없다며 부당한 명령을 거부해 그야말로 저항의 서사를 품고 있는 이력의 도시다. 한 도시가 이러한 스펙터클한 이력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러기에 여수는 바닷가의 돌 하나도 허투루 볼 수 없다.
그런 여수가 전국에서도 가장 핫한 도시가 되었다. 지난 몇 년 사이 여수는 참 많이 변했다. 2006년쯤 종포는 변변한 카페 하나 없던 곳이었다. 오래전 선착장이었던 곳을 메꾸어 공원을 만들고 해안선을 따라 여수구항까지 해변공원을 조성한 후 잠깐이었지만 여수사람들의 편안한 쉼터였다. 취사와 낚시가 가능해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종포를 자주 찾았다. 그러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가 개최되고 장범준의 여수밤바다가 히트하면서 여수는 잠깐 사이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동네가 되었다. 거기다가 해상케이블카, 낭만포차, 버스킹까지 시작되면서 쫑포의 전성기는 끝을 모르고 지속되었다. 그러다 코로나가 생기면서 몇 년 사이 잠잠해지는가 싶었으나 다시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여수를 찾고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느 지자체라도 여수를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그것이 어쩌다 운이 좋아서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장범준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사고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여수는 그럴만한 도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빼어난 자연경관에 박람회를 거치면서 확 달라진 도시 인프라에, 여수만의 서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로 생긴 관광콘텐츠들도 분명히 한몫을 했을 것이다.
여수를 찾는 사람들은 그런 여수에서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고 자신만의 느낌과 감정을 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소한 이야기들이 sns에 회자되면서 일 년에 1천만 명 넘는 사람이 여수를 찾게 되었을 것이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여수를 계속해서 유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보다 새롭게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
최근 여수 사람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오래간만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오면 열에 여덟, 아홉은 주말에 방 좀 잡아달라는 전화다. 여수 사는 사람들은 으레 받는 전화다. 그러나 이제는 성수기, 비성수기 구분이 없다. 주말이나 연휴가 끼면 방 좀 잡아 달라는 전화가 빠지지 않는다. 여수 사람들의 행복한(?) 푸념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여수의 무엇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찾게 만드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