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 어디를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등대다. 다 알다시피 등대는 밤에 항해하는 선박의 수로 안내를 도와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로 항해할 수 있도록 하며, 주로 항구나 해변의 방파제, 외딴섬 등에 세워진다.
용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빛의 깜빡임의 주기, 빛의 색깔로 먼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알게 해 주거나 항구로 입항하는 배들의 안전을 위해 빨간색 등대와 하얀색 등대가 쌍을 이루어 어두운 바다에서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된다. 물론 지금은 항법장치가 거의 모든 선박들에게 설치되어 있어 등대의 필요성이 예전만 못하지만 어느 바다를 가더라도 등대는 말없이 우두커니 서서 밤바다를 비추고 있다.
가까운 여수만 하더라도 이름 난 등대가 여럿 있다. 오동도 등대, 백야도 등대, 거문도 등대, 그뿐 아니라 여수신항과 신북항 방파제며 여수구항과 국동항 방파제에도 우두커니 서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몇 년 사이 꽤나 유명해진 등대가 종포에 만들어진 하멜등대다. 내 기억으로는 오래전 드라마에 배경이 되면서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엑스포를 거치며 '여수밤바다'가 공전에 히트를 기록하게 되자 하멜등대도 덩달아 낭만포차와 함께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여수의 명소가 되었다.
유럽에 조선 알린 최초 인물 하멜
종포해양공원을 걷다 보면 거북선대교 밑에서 끝날 무렵 만나게 되는 전시관이 있다. 바로 하멜전시관이다. 하멜전시관은 '하멜표류기'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하멜 일행이 여수에서 보낸 3년 간의 삶과 흔적을 모아 하멜 일행이 고국을 향해 떠난 역사적인 장소에 건립된 전시관이다.
동인도회사의 서기였던 핸드릭 하멜은 일행과 함께 일본 데시마로 가던 중 제주도 인근에서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면서 조선과의 인연을 갖게 된다. 서울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고 병영생활을 했으나 청국 사신에게 구출을 요청하다 발각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병영생활을 하던 중 대기근으로 하멜 일행은 남원, 순천, 여수 등으로 분산 수용되었고 여수에는 하멜을 포함 12명이 있었다고 하며 전라좌수영성 문지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멜표류기'는 13년 간의 조선에서의 생활을 접고 뱃놀이를 위장하여 일본으로 도망치듯 떠날 때까지 조선에서 머물면서 기록했던 것으로 원래는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연합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일종의 사내 보고서였다. 어찌 되었든 이 기록을 통해 유럽에 조선의 모습을 처음 알리게 되었으며, 2012 여수 세계박람회 때 네덜란드에서 원본을 기증해 하멜전시관 1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 마당에는 풍차와 하멜 동상이 설치되어 있으며, 바다 쪽 방파제 끝에는 하멜등대가 설치되어 여수밤바다의 멋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한 번쯤 가 본 사람은 하멜등대가 빨갛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빨간 하멜등대는 화려한 여수밤바다와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많은 사람들은 멋스럽게 빨간색으로 칠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하멜등대는 빨간색이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하멜등대도 여수밤바다의 또 다른 랜드마크이기 이전에 '등대'다.
하멜등대가 서있는 종포는 예전부터 돌산 우두리를 사이에 두고 무수히 많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곳이다. 여수구항의 초입에 있던 종포에는 바다에서 여수구항으로 입항하는 배들이 보면 오른편에 위치한다. 그래서 등대를 세울 때 빨간 등대를 오른쪽, 하얀 등대를 왼쪽에 세워 빨간 등대는 오른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왼쪽으로 비켜 가라는 뜻이고 하얀 등대(하얀색 대신 노란색을 쓰기도 한다)는 왼쪽에 장애물이 있으니 오른쪽으로 비켜 가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멜등대는 빨간색이어야 한다.
어쨌거나 하멜은 떠났고 그곳에는 그를 기념하는 전시관과 빨간 등대가 들어서 있다. 하멜등대 때문인지 하멜을 생각하면 빨간색의 하멜등대가 먼저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하멜과 빨간색은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저 하멜이 떠난 곳에 등대가 세워졌고 이름을 하멜등대라고 짓게 된 것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하멜등대에 새겨진 글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빨강이 그때의 하멜과 닮아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금은 저 바다 위에 가득한 허공뿐이나
한 시절 이 땅에 네덜란드 젊은이들이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다가 하늬바람 일던 그날 밤
귀향의 돛을 높이 올려 저 수평선을 넘어갔다오
이 땅에 한도 두고 정 또한 두고……
그 겨울 유난히 바람 잦고 오동도 동백꽃은 더더욱 붉었다 하더이다
- 하멜등대에 새겨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