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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8만 마리인 페로, 왜 마트에 양고기가 적을까?

by 페로 제도 연구소

페로에는 8만 마리의 양이 산다. 그럼 당연히 양고기가 주식이겠지. 이 생각으로 한우처럼 정형된 양고기를 기대하며 페로 제도의 마트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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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만큼 다양한 부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부위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냉동고 한편에 덩그러니 놓인 대용량 포장 몇 개가 전부였다. 종류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 오히려 소와 돼지가 거의 없는 나라에서 꽃등심 2덩이가 3.5만 원인 신기한 상황.


'내가 잘못 찾았나?'

다른 마트 몇 곳을 더 돌아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제야 궁금해졌다. 양을 기르는 나라에서 왜 양고기를 사기 어려운 걸까?




조사해보니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예상과 달랐다.

마트에 양고기가 없는 건 수요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마트로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첫째, 대다수의 도축이 농장에서 직접 이루어진다. 우리가 아는 대형 도축장이 아니라, 농부들이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양을 잡는다.

둘째, 지역 기반의 유대가 강하다. 이웃과 친척, 오랜 지인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준다.

셋째, 가정과 마을마다 건조창고가 있다. 양고기를 건조해서 보관하는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양고기를 사러 마트에 갈 필요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마트에서 양고기가 활발하게 소비될 환경 자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2023년 페로 환경청(Environment Agency)과 농업청(Agriculture Department) 주최 컨퍼런스에서 농부들이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왜 자국산 양고기를 온라인에서 찾아 사야 하는가?"


농부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다. 마트에 양고기를 납품하려면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책임져야 한다. 작은 농장을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여행 중 마주한 작은 의문 하나가 한 나라의 식문화와 유통 구조까지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 마트 진열대에 없다고 해서 그것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익숙한 방식과 다른 경로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페로 제도의 양고기는 마트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계절의 리듬을 따라, 오래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름 밖에 서 있는 여행자였다.


무언가를 찾을 수 없을 때, 그것이 정말 없는 건지 아니면 내가 찾는 방법을 모르는 건지 생각해 볼 일이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들이 온다. 페로 제도의 양고기 진열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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