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학교와 아무런 인연도 없는 주제에 무슨 단상.
주말이면 가끔씩 가족들과 산책을 다니는 곳이 있다. 바로 스탠퍼드 대학 교정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산타 클라라에서 차로 15분 정도의 꽤 가까운 거리에 있다. 캠퍼스 내에는 잔디밭, 분수, 미술관, 교회건물, 서점, 기념품 가게 등 아기자기하게 볼거리도 많아 아이들 손을 잡고 산책하기 딱 좋기 때문이다. 둘째 녀석은 이 스탠퍼드 대학 부설병원에서 태어났으니 이래저래 우리 가족과 인연이 있는 학교다(라고 억지스러운 망상으로 자기만족을 해본다).
스탠퍼드 대학은 미국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이며 산호세 지역의 랜드마크다. 또한 이 학교는 이곳 실리콘 밸리가 테크 기업의 허브로 발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1890년대 대학이 설립된 시절 학교 주변은 허허 벌판이었다. 학생들이 졸업하면 일자리를 찾아 다들 동부로 떠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학교는 졸업생들을 학교 인근에 남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학교가 보유한 주위 토지에 연구 단지를 세우고, 졸업생들이 창업을 통해 직접 비지니스를 하기를 장려했다.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 조성한 기금으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했고, 창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발전시켰다. 그 결과 전 세계 IT 기업의 총본산이 된 현재의 실리콘 밸리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 학교 졸업생들이 세운 회사가 현재까지 18,000개가 넘는다. 이 회사들이 해마다 벌어들이는 매출이 2.7조 달러에 달하고 지금까지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한다. 이 수치로만 따지면 세계 7위의 경제 규모라고 한다. 휴렛 패커드, 선마이크로 시스템즈, 실리콘 그래픽스, 시스코 등 누구나 알만한 전통적인 반도체 기업부터, 야후, 구글, 링크드인,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모두 이렇게 태어난 회사들이다. 이 학교의 위상이 새삼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이 전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스타트업들은 스탠퍼드 대학이 VC(벤처 캐피털)들과 함께 투자한 기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자금 지원 및 사업화 노하우 등의 인프라가 잘 되어있으니,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능력 있는 학부생들은 재학 중에도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다. 실패에 대한 부담도 없다. 얼마나 일이 재미있으면 학교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을 계속하겠는가 (무려 스탠퍼드를 그만두다니 학부모 입장에서는 상상이 안된다).
또한, 실리콘 밸리에서 그렇게 성장한 기업은 또다시 유망 기술을 보유한 학교 연구실에 투자한다. 충분한 연구비, 인턴십 기회를 지원받은 연구실은 우수한 연구 실적을 학계에 발표하며 기술을 다시 업계로 전파한다. 이 랩을 졸업한 대학원생들은 업계로 진출해 실리콘 밸리의 중추적인 인물로 성장한다. 이렇게 산학연 협동 모델을 통해 서로에게 돈과 사람을 주고 받으며 선순환을 일으킨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로서는 참 부러운 환경이다.
물론 한국도 산학연 협력 모델은 존재한다. 자금력 있는 대기업들이나 국책 연구소에서 실력 있는 대학 연구실에 연구비를 지원한다. 우수한 대학원생들을 선발하여 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꽤 오랫동안 좋은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발주하는 산학 협력과제는 회사에서 진행하기 애매해 R&D 외주 성격이 짙다. 연구비를 지원하는 대가로 결과물을 이전받아 회사 프로젝트의 애로 사항을 메꾸는 데 사용하곤 한다.
졸업생들의 취업을 위한 징검다리가 되는 등 나름 장점도 있다. 하지만, 용역성 개발 과제에 참여한 학생들은 결과로 논문을 쓰기 어렵다. 결과물이 이전될 때 지적재산권도 함께 포함되어 개발된 기술이 확장, 순환되지 못하고 기업으로만 몰리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도 대규모 기금을 투자해 학계 발전을 위한 중장기 연구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막 다니기 시작했을 때 지도 교수는 학생들에게 "월급쟁이 노예로 살지 말고 야망을 갖고 벤처 창업을 하라"라고 늘 강조했다. 젊음을 무기로 도전을 장려한 것인데,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몸소 벤처를 창업해 운영하시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닷컴 버블이 한창이었고, 실험실 연구(이상)와 실제 비즈니스(현실)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스크를 극도로 싫어하던 나는 '빨리 졸업이나 해서 취직이나 하는 게 장땡'이라며 지도 교수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버렸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도 교수의 행보는 '위대한 도전'이었던 것 같다. 벤처나 스타트업 생태계가 척박한 당시 한국의 환경에서 외로이 길을 개척하셨으니 말이다. 그 도전이 씨앗이 되었는지 선배 몇 분은 졸업 후 실제 스타트업을 창업해 지금도 열심히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최근 한국도 미국의 산학 협동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정부차원에서 대학의 창업을 육성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주도로 각 대학이 창업보육센터를 세워 젊고 패기 있는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부디 그 과정을 통해 한국도 많은 유니콘, 아니 데카콘 스타트업이 탄생하길 기원한다.
2년 전 스탠퍼드 대학 컴퓨터 과학과의 한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현재 회사에서 그 랩에 연구비 지원을 하고 있다. 담당 교수와는 과거 학회에서 몇 번 만나 친분도 있었다. 연구실의 연구 동향도 파악하고 추가 산학 협력 가능성도 타진하기 위함이었다. 회사 연구원 신분으로 산학 협력의 건으로 모교나 타학교를 방문하던 일은 한국에서도 많이 있었는데, 이번엔 왠지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초짜 대학원생 시절 이 학과 연구실에서 작성돼 발표된 논문을 읽으며 연구자의 꿈을 키우곤 했다. 그 논문들의 기술은 몇 년 뒤에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곧 실리콘 밸리 대기업의 CPU/GPU 제품에 탑재되곤 했다. 그 제품들은 세계 곳곳 많은 이들의 PC에 장착되어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연구원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늘 일종의 경외감으로 바라보던, 학과와 연구실에 발길을 들이밀던 순간이 그래서 매우 특별했던 것이다.
학과 복도에 걸려있는 이들의 과거 프로젝트 사진들을 보며 향수에 잠겼다. 이들이 벽에 박제한 것은 과거의 영광이었겠지만, 내게는 어렴풋이 남아있던 초심을 비춰주는 마음의 거울이었다. 짧은 영어로 논문을 뜨문뜨문 읽어 내려가던 스물아홉의 나는 십수 년 후 미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계속하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관광객스러운 모습으로 가족들과 가끔씩 스탠퍼드 교정을 걷다 보면, 나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주제에, 그래서 왠지 모를 묘한 마음이 들곤 한다. 오랜 세월 누군가의 뒷모습만 바라보다가, 어느 날 그 사람을 직접 대면을 한 그런 느낌이랄까. 딸의 손을 잡고 캠퍼스에 있는 미술관을 다녀오다는 길, 기념품 가게에서 산 학교 티셔츠를 아이에게 입히면서 "나중에 꼭 이 학교 가렴!"이라고 의미심장한 농담을 건네던 아빠의 마음에 그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후일 이 학교 학부 등록금을 알게 된 후 '앗, 아빠가 그때 했던 말 취소'라고 태세 전환을 했던 것은 옥의 티).
- 예나빠.